10년 만에 1군 마스크 쓴 SK포수 허웅 “이등병 때 방출됐어요… 호프집도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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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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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의 전력질주를 본 적이 있는가. 요즘 SK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면 가슴보호대와 무릎보호대에 마스크까지 쓴 포수가 공수 교대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야생마’로 불렸던 투수 이상훈(전 LG)이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다. 야수들 역시 힘차게 뛰어 자기 수비 위치로 간다. 그런데 포수의 전력질주라니. 이유는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1군 포수는 “한 번은 밟아봐야 여한 없이 야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던” 자리였다. 10년 만에 꿈을 이룬 주인공은 SK의 ‘1군 포수’ 허웅(28)이다.

○ 10년 기다려 핀 꽃

부산고 시절 그는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배터리를 이룬 유망주였다. 2002년 신인 지명에선 현대로부터 2차 2순위(전체 18순위) 지명도 받았다. 그의 꿈은 박경완(SK) 같은 명포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대에 입단하니 당시 현대 소속이던 박경완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박경완이 SK로 팀을 옮기자 김동수(넥센 코치)라는 또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2군에서만 몇 년을 보내다 상무에 지원을 했으나 이번엔 정상호와 박노민에게 밀려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2006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서러운 이등병 시절 팀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그는 운동을 떠나지 못했다. 방망이를 구해 틈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스윙을 했고 동료들과 캐치볼도 했다. “1군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공을 받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08년 제대 후에는 고향인 부산 인근 경남 김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도 진출했다.

부산고 시절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배터리를 이룬 유망주 허웅(SK).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기만 했다. 1군 무대를 밟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SK 제공
부산고 시절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배터리를 이룬 유망주 허웅(SK).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기만 했다. 1군 무대를 밟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SK 제공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준비해 온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SK 금광옥 원정기록원의 추천으로 테스트를 받아 SK에 신고 선수로 입단한 것이다. 기약 없는 2군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는 참고 기다렸다. 박경완과 정상호 등 주전 포수들이 잇달아 부상을 당하자 김성근 감독은 지난달 29일 그를 마침내 1군에 불러올렸다. 4일 LG전에서 처음 선발 출장한 뒤 10일 두산전까지 줄곧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긍정의 힘을 믿었다

현재까지 평가는 긍정적이다. 타격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10일 현재 타율 0.211) 투수 리드와 경기 운영은 안정적이라는 평이다. 투수난에 한숨을 쉬던 김 감독은 “투수를 편하게 해주는 포수”라고 칭찬했다. SK 관계자는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자 몸을 쭉 펴서 몸이 크게 보이도록 하더라. 1군에 처음 올라온 선수답지 않았다. 투수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허웅은 “10년을 기다리면서 힘들 때가 참 많았는데 그럴 때일수록 일부러 더 밝게 말하고 행동하려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성격이 그렇게 되더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의 이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항상 열심히 뛰고, 파이팅 외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1군에서 뛰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는 허웅이 내뿜는 행복 바이러스가 SK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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