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야구 이야기] 넥센 문성현의 공속에 숨어있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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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8일 07시 00분


넥센 문성현.스포츠동아DB.
넥센 문성현.스포츠동아DB.
# 지난해 1월. 일본 전지훈련 중인 넥센 선수들에게 구단 홍보팀 직원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선수단 여러분. 저는 지금 몸이 많이 아파서 여러분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남은 기운을 모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팀 사정이 안 좋더라도 모두들 힘내 주세요.’

넥센 문성현(20·사진)은 “그 편지를 보고 고(故) 이화수 대리님이 아프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늘 웃는 모습이셔서 그랬나 봐요. 언젠가부터 야구장에서 안 보이셨지만, 문자 메시지로 인사드리면 항상 격려해 주셨기 때문에 전혀 몰랐죠.”

문성현은 유난히 이 대리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선수였다. “제가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항상 그러셨어요. 이 대리님께서 ‘문성현은 분명히 좋은 선수가 될 테니 꼭 눈여겨 봐달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고요.”

하지만 이 대리는 나이 서른셋에 혈액암이라는 암초를 만났고, 결국 지난해 6월 25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대리의 영정 사진과 마주한 문성현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올랐다.

문성현은 여전히 이 대리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메시지를 기억한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빛을 볼 날이 올 거야. 아프지 말고 꼭 건강해라.’스스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까지 다른 이의 건강을 살폈던 한 젊은 직원의 진심에 어린 투수의 마음도 요동쳤다. “기일이 6월 25일이라고 했죠. 그 날 마운드에 올라 당당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 “문성현이 어디 갔냐!” 서울 남정초등학교 시절, 김종훈 감독은 훈련이 끝나기가 무섭게 꼬마 문성현을 불러 세우곤 했다.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지금부터 기본기를 잘 닦아 놔야 한다”면서, 매일 두 시간씩 전신 거울 앞에 세워 놓고 섀도 피칭을 시켰다.

“다른 애들은 다 집에 가는데 유독 저만 붙들고 그러셨어요. 저도 얼른 집에 가서 놀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빛을 발했다. 청소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고 프로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기본기나 폼 하나는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를 숱하게 받았다.

“어렸을 때 야구 제대로 배웠나 보다”는 얘기까지 들어봤다. “제가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는 게 감독님 덕분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요. 지금 그 말씀을 드리면 ‘그것 봐라’ 하세요. 헤헤헤.”

그리고 문성현은 이제 다짐한다. “이화수 대리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잘 돼야 해요. 김종훈 감독님이 기초를 튼튼히 다져 주셨으니까,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예요.” 공 하나에 환희와 절망이 오가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 하지만 누구에게나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누군가의 진심이다.

배영은 기자 (트위터 @goodgoer)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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