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박석민이 이용규에게 묻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7시 00분


내 결혼식때 안와서 섭섭했는데 축의금 봉투도 없던걸?
“ㅋㅋ…조카 옷 선물로 대신하려 했지”

2003년 덕수정보고 이용규와 대구고 박석민은 청소년야구대표팀 톱타자와 중심타자로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와 탁월한 야구센스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이용규, 타고난 야구천재로 기대를 모았던 박석민.

그러나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이용규는 LG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2005년 KIA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했다. 박석민 역시 삼성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다 상무를 거쳐 2008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고교시절, 힘겨웠던 프로 초창기,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동갑내기 친구. 평소 장난기 많은, 엉뚱한 캐릭터로 유명한 박석민은 농담과 함께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했고, 이용규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도 진지한 모습으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이용규는 다음 릴레이 인터뷰 대상자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 활약을 보며 고교 때 많이 챙겨주셨던 어머님 생각이 나서 더 기뻤다”고 말한 덕수정보고 동기생 한화 최진행을 택했다.

○박석민이 이용규에게

친구야,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늦었지만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낸 거 축하한다. 나도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해서 같이 대표팀에서 한번 뛰어보고 싶구나. 네가 LG에서 주전을 꿰차지 못하고 있을 때는 친구로서 정말 마음 아팠다.

KIA 가서 대한민국 최고의 외야수로 올라선 모습을 보니 친구로서 기분 좋고 가슴 뿌듯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자극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항상 부상 조심하고,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구나.

● 이용규가 박석민에게

석민아, 먼저 할 말이 있어. 결혼식 못 가서 정말 미안해. 항상 마음에 짐이었다. 운동시간이랑 겹쳐서 못간 거 알지?(웃으며) 설마 축의금 안준 거 질문한 건 아니겠지? 친구끼리 축의금 늦게 주기도 뭐해서. 조카 옷 사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석민이 고등학교 때는 나보다 훨씬 야구 잘했고 유명한 선수였잖아.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삼성에서 중심타선에 서있는 모습 보며 친구로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야 석민이 능력을 보여주고 있구나. 올해 부상이 많았는데 꾹 참고 경기에 뛰는 모습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진짜 프로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 우리 함께 더 열심히 해서 2013년에는 태극마크 달고 꼭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함께 뛰자!
Q1.주전 자리도 못잡았는데 기습번트 그만…
A1.내가 번트만 대면 호수비 펄펄 날았잖아


-치아를 교정하고 있던데, 지금도 잘 생기고 멋진데 왜 하는 거야? 나처럼 못생긴 남자도 그대로 사는데 말이야. 하하.

“하하하. 치과치료 받을 일이 있었는데, 교정치료도 받는 게 좋다고 권해서. 망설이지 말고 빨리 해버리자 그러면서 시작했지. 지난해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2008년부터인가? 방망이 치는 스타일을 일본 선수들처럼 바꾸고 나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어떤 계기로 그런 거니? 또 잘 치는 비결도 궁금하구나.

“정확히 봤네. 2008년부터 맞다. 나랑 일본에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많아서 그런지 일본 야구를 좋아하게 됐어. 경기도 많이 보고. 일본 선수들은 상체를 세우고 타이밍을 잘 맞추는데 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고. 대신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는 그런 느낌, 장타를 못쳐도 타율을 높이고 출루도 많이 하는 그런 타격을 많이 참고했어. 이치로나 아오키가 타격 때 다리를 어떻게 드는지 유심히 보기도 했고. 사실 나 같은 타자가 홈런 몇 개 쳐봤자 주전도 보장 안 되고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그런 면에서 일본 타자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

-FA(프리에이전트)가 되면 일본에 진출할 생각은 없니? 넌 좀 더 큰 무대에서 뛰어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

“음, 기회가 있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어. 사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 가서도 (김)태균이 형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어. 최근에는 홈런 타자들이 해외에 많이 도전하는데 ‘나 같은 스타일의 타자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면을 보여주고 싶어. 특히 우리나라 최고 스타들이 도전하고 성공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도전심이 막 생기더라고 하하하.”

-내가 광주에 가면 네가 만날 밥 먹자고 해놓고는 잠수를 타더라. 왜 그리 바쁜 거야? 연애하느라 그런 거니? 난 장가 일찍 가서 너랑은 다르다.

“이상하게 광주에서 삼성이랑 하면 지고, 꼬이고 그런 경기가 많더라고. 아니, 끝나고 분위기가 좋아야 좀 일찍 나가서 밥도 먹고 하지. 선배들 다 남아있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웃음). 사실 경기 끝나고 운동을 더 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어. 그러다 보면 밤 11시, 12시 인데 그때 보기도 그렇고. 내년에는 우리가 많이 이겨서 꼭 밥 먹자 하하”

Q2.청소년대표 합숙때 고스톱 치던 기억나?
A2.감독님 기습 방문에 너 욕조에 숨었잖아

-부탁이 있다. 제발 좀 경기 전에 나한테 와서 ‘3루쪽으로 번트 대겠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좀 마라. 난 아직 팀에서 자리 못 잡았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올 시즌 삼성전에 기습번트 두 번 시도했는데 다 죽었잖아. 그것도 석민이 네가 호수비로 다 잡았지. 기억 안나? 하도 방망이가 안 맞아서 번트 시도했잖아. 그런데 유난히 내가 대면 석민이는 수비를 잘 하더라(웃음)”

-청소년대표 시설 호텔에서 합숙할 때 얘기다. 한번은 새벽에 우리끼리 고스톱을 치다가 갑자기 감독님(대구고 박태호 감독)한테 걸려 혼났는데 기억 나니? 넌 완전히 타짜더라. 고등학생이 언제 고스톱을 배운 거야? 지금도 고스톱 치냐? 잘 치는 비결은 뭐냐? 원래 뭐든지 승부근성이 강해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지는 마라.

“하하하. 기억나, 기억나. 그때 정말 웃겼어. 너 감독님이 방문 두드리자 혼자 숨었잖아. 그것도 화장실로 뛰어가 욕조로. 그 큰 덩치로 욕조에 누워있는 모습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조금 혼나고 말았는데, 혼자 숨어서 감독님이 ‘석민이는 내 방으로 따라와’ 그러셨지. 아마 석민이 고교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님이셔서 더 숨고, 더 혼나고 그랬던 것 같다.”

-경기할 때 보면 가끔 뜻대로 안 되면 방망이도 집어던지고 좀 거친 모습을 보이던데, 근성이 대단한 것 같다. 그런 근성은 어디서 나오는 거니? 내게는 부족한 것이라 부럽다. 나도 배울 수 있을까?

“사실 고등학교 때 투수로 마운드에 서 있으면 괜히 웃고 있는 타자들이 보기 안 좋더라고. 그래서 상대 투수를 존중하는 뜻에서 타석에 무표정하게 서있어. 그리고 워낙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승부할 때면 내 스스로에게 화내는 모습, 오기 같은 게 화면에 표출되는 것 같아.”

-작년에 내 결혼식 때 안보여서 섭섭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축의금도 없더라. 1년까지는 참아줄게. 빨리 해결해라.

“(진짜 질문이 있었다며 크게 웃으며) 내년에 조카 옷 사서 꼭 줄게. 계속 축의금 대신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 하하하”

KIA 이용규는?

▲생년월일=1985년 8월 26일 ▲학교=성동초∼잠신중∼덕수정보고 ▲키·몸무게=175cm·70kg(좌투좌타) ▲프로 데뷔=2004년 LG(신인 드래프트 2차 2번·전체 15번) 입단 ▲2010년 연봉=1억6000만원 ▲2010년 성적=129경기 472타수 145안타(타율 0.307) 3홈런 51타점 74득점 25도루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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