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예비신부 김문정의 눈물 “금메달 혼수품 꿈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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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7시 00분


내년 1월 양궁 선배 최원종(오른쪽)과 결혼하는 김문정.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내년 1월 양궁 선배 최원종(오른쪽)과 결혼하는 김문정.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한국의 여자단체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자대표팀의 맏언니는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단체전 엔트리는 3명뿐입니다. 김문정(29·청원군청)의 자리는 없었어요.

개인전 예선에서도 5위를 차지했지만 23일 열리는 개인전 토너먼트에서도 출전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개인전 토너먼트 출전선수 인원을 2명으로 제한했거든요. 한국이 금·은·동을 모두 가져갈까봐서 그랬다나 봐요. 애꿎은 피해자가 된 김문정의 속이 얼마나 쓰릴까요.

“저도 선수인데 왜 시상대에 안 서고 싶겠어요. 꼭 금메달을 따고 결혼하고 싶었는데….”

그렇습니다. 아시안게임 이후 결혼을 하는 선수는 윤옥희(25·예천군청) 뿐만이 아니었어요. 내년 1월8일, 그녀도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합니다. 예비 남편 역시 양궁선수랍니다. 2005세계선수권 남자단체전 우승에 빛나는 최원종(32·예천군청)이 주인공입니다.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는 아깝게 고배를 마셨습니다. 예비남편 몫까지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더 우울했나봅니다. 그 때였어요. 예비남편에게 문자가 오네요. “마눌…. 당신이 최고야.” 때로는 몇 마디의 말로도 쓰린 가슴을 다독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2년 전이었습니다. 선배로만 알던 사람이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1년을 따라다녔답니다. “오빠 저는 ‘느린’ 사람이에요. 천천히 시작했으면….” 그렇게 한 남자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양궁선수로 살아남으려면, 정말 느린 사랑을 할 수밖에 없어요. 금메달보다 국내선발전이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고된 훈련을 견디느라 1년에 만나는 건 고작 5∼6번뿐이었대요.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대요. 2002부산아시안게임 여자개인결승이었습니다. 김문정은 대만 선수에게 6점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때는 너무 어렸다”고 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녀의 ‘느린 사랑’이 결실을 맺었던 것처럼, 그녀의 ‘느린 양궁 인생’도 결실을 맺을 날이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의 눈물이 2년 뒤, 런던에서 꽃 피우기를 기대해 봅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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