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의 유럽 연수기] “요즘 백수신데…” 지성이가 밥값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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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7시 00분


영국에서 지성 청용 성용을 만나다…오랜만에 한국음식 먹으며 유쾌한 수다

이보다 즐거울 수는 없다. 1일(한국시간) 볼턴-리버풀전이 끝난 뒤 월드컵 16강 주역들(왼쪽부터 박지성-정해성 전 대표팀 코치-기성용-이청용)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이보다 즐거울 수는 없다. 1일(한국시간) 볼턴-리버풀전이 끝난 뒤 월드컵 16강 주역들(왼쪽부터 박지성-정해성 전 대표팀 코치-기성용-이청용)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영국으로 오니 조금은 짜증이 나려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날씨에 적응했는데 전형적인 영국 날씨에 다시 몸을 맞춰야 하니 말이다.

맨유와 토트넘전 경기 당일 서둘러 기차를 타고 올라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런던에 고등학교 동기동창 친구가 본인 차로 함께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친구는 나보다 더 설레는 것 같았다.

평소에 잘 보지도 못하던 경기도 보고,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과 직접 만나고 식사까지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약속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선수들을 보겠나 싶었던지 기꺼이 운전하겠다며 앞장섰다.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4시간 30분정도 예상하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중간쯤 휴게소에 들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자세히 보니 맨유 유니폼을 입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휴게소에서 잠시 머문 뒤 부지런히 이동해서 도착한 올드 트래포드. 참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아 감격스러웠다. 5파운드를 내고 주차한 뒤 10분 정도 걸어서 운동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가볍게 긴장됐다. (박)지성이가 11명 워밍업을 하는 쪽에 포함돼 있는 모습을 보고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뒤 가볍게 맥주를 한 잔 사서 손에 들었다.

지성이가 직접 마련해준 티켓. 선수 가족들이 앉는 좌석이다.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바로 위쪽에 위치한 자리다. 플레이어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고, 간단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지성이 에이전트와 영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지성이의 슛이 골대를 때리는 순간 오랜만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했다. 지성이는 경기 내내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수에서 자기 역할을 최대한 해냈다. 경기 시작할 때 ‘오늘 몸이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플레이가 좋았다.

그 다음날에는 (이)청용이 경기를 보려고 움직이고 있는데 친구가 선수들 유니폼을 사서 사인을 받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했다. 잠시 대표팀 생활이 머리에 떠올랐다. 파주에 모이기만 하면 사인볼이 스트레스였다.

허정무 감독님께 “선수들이 파주에 들어오면 사인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허 감독님이 사인 금지령을 내렸다. 선수들을 위해서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친구가 어렵게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선수들 유니폼을 사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볼턴의 홈구장 리복 스타디움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축구팬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이렇게 응원을 해주는 팬들이 있어서 지성 청용 선수가 힘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 국가대표가 잘 할 수 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청용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소름이 살짝 돋았다. 운동장에 들어서는 청용이가 한결 당당해 보였다. 청용이에게 볼이 오면 자신감 있게 처리하는 모습이 너무 뿌듯하게 느껴졌다. 청용이가 75분을 뛰고 교체해서 나오는데 모든 홈팬들이 기립 박수를 보낸다.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경기 마치고 나오면서 청용이 아버님을 만났다. 경기 전 입장권을 찾으려고 갔는데 직원이 표 하고 쇼핑백을 줬다. 열어보니 따뜻한 밥과 김치, 김, 계란말이가 담겨있었다. ‘이건 웬 횡재.’ 알고 보니 청용이 어머님께서 손수 싸 주셨다고 한다. 정말 감사하다고 지면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경기 마치고 맨체스터 외곽에 있는 ‘동화’라는 한국 식당에서 지성, 청용, 성용을 만나 식사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주로 내가 가장 말을 많이 했다. 지성, 성용, 청용이가 말이 많은 선수들이 아니라서 내가 혼자 떠들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이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껏 시키라고 했다. 그러자 지성이가 “정 선생님 요즘 백수신데 괜찮습니까”라고 받아쳐 웃음바다가 됐다. “괜찮다 선생님 아직 1∼2년은 먹고 살수 있다. 마음껏 시켜라.”

피곤한데 저녁시간을 내준 3명의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타지에서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그들이 매우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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