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달기 싫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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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7시 00분


대표팀 맏형 박경완, 스승 조범현 감독을 위해…

강민호 “저, 대드는거 아니랍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주전포수 박경완(오른쪽)이 후배 포수 강민호에게 송구 동작을 전수해주고 있다. 사직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강민호 “저, 대드는거 아니랍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주전포수 박경완(오른쪽)이 후배 포수 강민호에게 송구 동작을 전수해주고 있다. 사직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쌍방울 배터리 코치였던 조 감독님
매일 공 300개 쌓아놓고 지옥 훈련
“차라리 죽여”라며 대들었었는데…
날 만들어준 은혜 당연히 갚아야죠


체력소모가 가장 큰 포지션 포수, 그것도 마흔을 앞둔 프로 20년차다. 게다가 이번 겨울 오른쪽 아킬레스건 수술을 앞두고 있다. 한참 후배인 이승엽(요미우리), 김동주(두산)는 이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그동안 국가대표로 많은 헌신을 했다. 대표팀을 고사했어도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경완(38)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사직에서 땀을 쏟고 있다.

○“차라리 날 죽여!”라고 소리쳤던 조범현 감독에 대한 보은


28일 박경완은 사직에서 훈련을 마치고 잠시 덕아웃에 앉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다른 감독님이었다면 대표팀 합류를 크게 고민했을 것 같다. 조범현 감독님이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부산으로 왔다”고 했다. 박경완은 올해 아킬레스건 부상과 싸우며 시즌을 치렀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은사 조범현 감독을 위해 모든 것을 미뤘다. 박경완은 “대표팀은 항상 영광이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고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 감독께 갚을 게 많다. 조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지금까지 프로에서 뛸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경완이 조범현 감독과 만난 것은 1994년 쌍방울 시절이다. 박경완은 “쌍방울에는 그 때까지 배터리 코치가 없었다. 삼성에서 은퇴한 조 감독이 코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나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3년 동안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다”며 웃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그 때를 추억한 박경완은 “3년 동안 쉰 적이 없었다. 공 300개를 쌓아놓고 블로킹 훈련을 했다. 조 감독이 바로 옆집에 이사까지 와서 밤에는 놀이터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힘들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공 받다가 쓰러져도 공이 계속 날아와 온 몸에 맞을 정도였다. 한번은 훈련하다 조 감독에게‘차라리 날 죽여!’라고 욕한 적도 있다. 얼마나 미웠는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박경완은 “조 감독이 포수장비를 모두 차고 온 몸으로 직접 가르쳐줬다. 혹독했지만 ‘코치님 그것보다 이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면 다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줬다. 정말 힘들었지만 1997년 현대로 트레이드돼 조 감독과 헤어질 때는 앞이 막막했었다. 항상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강민호, 이제 네가 최고가 돼라

박경완은 26일 첫 훈련부터 강민호(롯데)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28일에도 2루 송구 풋워크, 송구자세를 지적하며 함께 훈련했다. 강민호가 “도루를 잡기위해 2루로 공을 던지기 위한 몇 가지 풋워크를 갖고 있냐?”는 조 감독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동작으로 한다”고 하자 당장 “구질, 코스, 투수유형에 따라 다른 풋워크로 던져야 한다. 공을 던질 때 오른쪽 다리가 뒤로 빠지는 버릇, 팔이 옆으로 퍼지는 것 모두 송구시간을 늘리는 안 좋은 습관이다”며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네 상태로는 도루 저지율이 3할을 넘을 수 없다. 방망이가 잘 안 맞으면 이 자리에 언제 수비 잘하는 포수가 대신 앉을지 모른다”며 엄하게 말했다.

강민호도 롯데의 주전 포수고, 대표팀 선수다. 그러나 박경완이 이처럼 혹독하게 훈련을 돕고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박경완은 강민호에게 “앞으로 네가 최고의 포수로 10년 이상 뛰어야 하지 않겠냐? 지금 송구동작으로는 팔꿈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당장 어색하더라도 빨리 네 것으로 만들자”며 어깨를 두드렸다.

○역대 국가대표 중 가장 팀워크가 좋다


박경완은 국가대표 중 가장 고참이다. “꼭 우승해야하는 아시안게임이 솔직히 가장 부담된다. 맏형으로 책임이 무겁다”고 했지만 모든 선수들이 함께 만들고 있는 밝은 분위기에 큰 기대를 걸었다. 박경완은 “사실 대표팀선수들은 서로 소속팀이 다르고 스타들이기 때문에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비슷한 또래가 많아서 그런지 잘 어울리고 하나로 뭉쳐있다. 지금까지 대표팀 중 최고의 팀워크인 것 같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아시아 최고라는 사실을 꼭 보여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직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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