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24승… 포심→투심→커터 무기는 바뀌어도 투혼은 한결같아 한계를 넘어서니 마침내 亞최고봉
“목표가 분명하고 소망이 간절하면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뤄지는군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통산 124승째를 따내며 아시아 출신 최다승 투수로 자리매김한 박찬호(37·피츠버그)는 3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대기록의 기쁨을 팬들과 함께 나눴다. 박찬호는 2일 플로리다와의 방문경기에서 3-1로 앞선 5회 등판해 3이닝 동안 안타는 1개도 맞지 않고 삼진 6개를 잡는 퍼펙트 피칭으로 5-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그는 LA 다저스 시절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일본·은퇴)가 거둔 123승을 넘어섰다.
아시아 투수 최다승은 그가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기록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1994년부터 17년간 수많은 난관 속에 이뤄낸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박찬호의 야구인생을 그와 함께했던 구질로 되짚어본다.
○ 승승장구: 포심패스트볼
공주고와 한양대 시절 박찬호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그의 잠재성을 간파한 LA 다저스는 12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계약금으로 그를 붙잡았다. 공만 빨랐던 그는 첫해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했지만 호된 신고식을 치른 뒤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 시속 150km 중후반의 강속구를 씽씽 뿌려대며 리그 최고 수준의 파워 피처로 떠올랐다. 당시 그가 던진 포심패스트볼은 볼 끝이 떠오르는 착시현상까지 일으키는 ‘라이징패스트볼’이었다. 강속구와 함께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 앞에 덩치 큰 타자들의 방망이는 헛돌기 일쑤였다.
다저스 시절 그가 즐겨 던진 또 하나의 구질은 슬러브다. 슬라이더와 커브의 특징을 합친 이 구질은 슬라이더처럼 빠르면서 동시에 커브처럼 날카롭게 떨어져 박찬호의 주무기가 됐다. 1997년 14승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그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짜리 대형 계약에 성공했다. 톰 힉스 당시 텍사스 구단주가 전용기를 제공했을 정도로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 재기의 발판: 투심패스트볼
부푼 기대처럼 텍사스는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갑자기 허리 부상이 찾아왔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겹쳐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적 첫해인 2002년 9승으로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2003년 1승, 2004년 4승에 그치며 ‘먹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결국 2005년 시즌 중반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다.
어느덧 나이는 30대에 접어들었다. 강속구를 잃어버린 그는 변화를 꾀해야 했다. 2003년경부터
여기서 눈에 띄는 구종이 바로 커터, 즉 컷패스트볼이다. 커터는 직구처럼 빠른 슬라이더로 보면 된다. 뉴욕 양키스의 철벽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주무기로 타자 앞에서 날카롭게 꺾이는 공이다. 박찬호는 “올 초 몸담았던 양키스에서 리베라가 던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고 그로부터 커터 던지는 그립을 배웠다”며 “1년 내내 연마했지만 자신감이 없다가 신기록을 세운 날에야 제대로 뿌렸다. 위력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여전히 150km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고 변화구 제구도 안정적이다. 여기에 커터까지 갖췄다면 롱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 된다. 송재우 OBS 해설위원은 “구위는 물론이고 베테랑으로서의 경기운영 능력까지 박찬호는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내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닐 헌팅턴 피츠버그 단장도 “그라운드 위에서는 성적으로, 밖에서는 리더십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투수다. 공식적인 제안을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문은 열려 있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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