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도 못한 채…” 허재 감독의 ‘思父曲’

동아일보 입력 2010-06-10 03:00수정 2010-06-1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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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스타아들 만들기’에 지극정성 허준씨 작고
2005년 KCC 사령탑으로 취임한 아들 허재 감독(왼쪽)을 축하하고 있는 허준 씨. 생전에 허 씨는 허 감독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해 아들을 최고의 농구 스타로 길러냈다. 사진 제공 OSEN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네요.”

잔뜩 잠긴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메마른 것 같다던 그의 눈가는 어느새 다시 붉어졌다. 9일 새벽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프로농구 KCC 허재 감독(45). 전날 아버지 허준 씨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용인의 KCC 숙소에 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임종도 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데…. 가슴이 찢어져요.”

현역 시절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날린 허 감독. 그의 뒤에는 늘 아버지의 든든한 그림자가 있었다. 아버지 없이 허재는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평북 의주 출신의 실향민으로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고인은 24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2남 2녀의 막내인 허 감독에게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학창 시절 집 마당에 농구 골대까지 직접 설치해 훈련을 시키자 허 감독은 나무 때문에 운동이 잘 안 된다며 꾀를 부렸다. 그러자 허 씨는 그렇게 아끼던 정원수를 모두 베어 버렸다. 아들의 훈련 태도와 경기 내용 등을 꼼꼼하게 적은 ‘농구 선수 허재에게 보내는 일기’를 20년 넘게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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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얽힌 얘기는 유명하다. 허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허리를 다친 허 감독에게 처음 뱀탕을 먹게 한 뒤 20년 동안 아들의 몸보신에 온 정성을 다했다. 경기 양평군 용문사 근처의 영양원에서 용하다는 뱀만 구해 한 번에 200마리씩 1년에 3번씩 먹게 해 허 감독이 먹은 뱀만도 1만2000마리에 이르렀다. 타고난 강골이던 허 감독은 그 덕분에 30대 후반까지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유지했다.

대장암 수술과 당뇨 합병증으로 거동이 힘들었던 허 씨는 최근에는 허 감독의 뒤를 이어 농구를 하고 있는 손자 웅과 훈의 경기를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웅이가 며칠 전 청소년 대표에 뽑혔다고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생해요. 늘 아들, 손자 걱정만 하셨는데 이젠 먼 곳에서 편히 지켜보셨으면….”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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