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워 몇번이고 포기 고민… 정상에 태극기 펴자 힘솟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여성 첫 세계 14좌 완등’ 오은선, 베이스캠프 도착

더는 안올라가도 된다는게 너무 좋아
감정이 북받쳐 아기처럼 소리 질렀죠

작년과 루트 다르고 경사 가팔라 고생
식량배낭 잃어버려 며칠간 물만 마셔


“무사히 돌려보내 주셔서, 또 정상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오르며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14봉우리 완등의 역사를 쓴 오은선(44·블랙야크)이 29일 오후 3시 45분(한국 시간·현지 시간 0시 30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는 안전 등반을 비는 라마제단 앞에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오은선은 안나푸르나 첫 도전에 실패한 지난해 10월 19일에는 이곳에서 “무사히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등정 순간에 대해 “몇 번이고 돌아갈까 생각했다. 결국 정상에 서서 피켈에 태극기를 묶는 순간 힘이 솟았다”고 말했다.

―몸 상태는….

“감기가 다 낫지 않았다. 기침이 계속 나온다. 더욱 심각한 건 하체다. 다리 드는 것도 너무 힘이 든다. 며칠 동안 거의 물밖에 먹은 게 없다. 캠프3(6400m) 가는 길에 눈보라가 쳐서 식량이 든 배낭을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정상 도전 기간 내내 식량이 부족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원과 셰르파 모두 며칠 동안 먹은 게 거의 없다. 어제 캠프1로 돌아와서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밥을 먹으니 속이 메슥거려서 제대로 먹지 못했다.”

―스페인 원정대 조난으로 하산 결정이 어려웠을 텐데….

“27일 캠프4(7200m)에 도착해 텐트에서 쓰러진 후 다음 날 스페인 원정대 소식을 들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우리 셰르파들이 구조 요청을 받았을 때 빼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지쳐 자칫하면 우리가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조난당한 사람이 캠프4까지 내려온다면 어떻게든 데려가겠지만 7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게다가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곳을) 다시 올라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셰르파 중 리더인 옹추가 30분 정도 나갔다 왔는데 날씨가 안 좋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했다. 28일 오후 1시쯤 헬기를 이용한 구조작업이 결정된 뒤 하산을 결정했다. 스페인 원정대에 미안하다고 하니까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안전하게 내려가라고 하더라.”

―이번 원정이 다른 원정과 다른 점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지난해 안나푸르나 왔을 때보다 루트가 많이 달라져서 애를 먹었다. 경사도 더 가팔랐던 것 같다. 27일 캠프4를 나설 때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하지만 결국엔 가게 될 줄 알았다. 정상을 앞두고 2시간 전에는 너무 추워서 계속 가야 되나 고민도 많이 했다.”

―정상에 섰을 때 두 손을 모아 연방 감사함을 표했는데….

“응원해주신 국민께 드리는 감사였다. 부모님도 생각났다. 산악계 선후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게 감사했다. 더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아기처럼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다. 여행도 아니고, 책을 읽고 싶은 것도 아니고 따뜻한 찜질방에서 식혜 마시면서 쉬면 좋겠다.”

―찜질방이면 많은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

“(웃음) 성원해준 국민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는데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정말 감사하다.”

안나푸르나=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