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가을이야기] 조성환의 ‘가을 사과’

  • 입력 2009년 10월 5일 0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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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33·롯데)은 사과부터 했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지금쯤 서울 숙소에서 5차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담담하게 인정합니다. “경기를 풀어나가는 게 너무 미숙했으니까요.”

롯데는 3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에 세 번째 패배를 당했습니다. 부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쓸쓸한 가을잔치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밤새 잠을 못 이뤘답니다. 너무 분하고 속상했거든요. 1-3으로 뒤진 4차전 3회 2사 만루. 민병헌의 땅볼 타구를 잡다 놓쳤고, 곧바로 용덕한의 싹쓸이 적시 2루타가 나왔습니다.

“욕심이 앞서서 서두르다, 실책 하나로 한해 농사를 망쳤네요.” 1차전의 영웅이었던 그의 목소리가 쓸쓸하기만 합니다.

힘든 한 해였습니다. SK전에서 채병용의 몸쪽 공에 얼굴을 맞았고,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동네에서 매일 캐치볼을 하는 아들 영준은, 아빠가 피 흘리는 모습을 TV로 본 뒤 “야구는 너무 위험해. 아빠가 야구 안 하고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합니다. 그와 가족에게는 그렇게 지울 수 없는 아픔입니다.

그래도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일부러 더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었습니다. 경기든, 자신과의 싸움이든, 다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답니다. 가장 이기고 싶었던 경기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경기 후, 이웃사촌이자 ‘멘토’인 박정태 2군 코치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고생 많았다. 주장으로서 네 할 일은 다 했다. 푹 쉬어라.” ‘죄송합니다, 코치님’이라는 답장을 쓰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칩니다.

다음 날, 고개를 푹 숙인 채 거리로 나선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왜 저 같은 선수에게 사인을…. 4차전 못 보셨나요?” 농담 삼아 던진 그의 말에 팬들은 고개를 내젓습니다.

“1년 동안 참 수고 많았심더. 내년에 더 잘하면 되지 않습니꺼.” 게다가 영준이와 함께 나간 동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손을 잡아끕니다.

“조성환 아저씨, 야구 좀 가르쳐 주이소! 롯데 자이언츠 선수잖아예.” 졸지에 아이들의 배팅볼 투수 노릇을 하면서 그는 생각합니다. ‘난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요.

“용기가 생겨요. 내년엔 꼭 부산이 가을에 웃을 수 있도록, 제가 앞장서서 이를 악물겠습니다.” 롯데의 ‘혼(魂)’이라는 조성환이 목소리에 힘을 줍니다. 그와 롯데의 가을은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 테니까요.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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