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도전…노장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동아일보 입력 2009-07-21 02:57수정 2016-01-18 16:5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60세 왓슨 18번홀 통한의 보기, 4개홀 연장서 ‘쓴잔’

메이저 최고령 챔프 실패… 36세 싱크 메이저 첫 우승
브리티시오픈 골프

“거의, 거의, 꿈이 이뤄질 뻔했다(And it was almost. Almost. The dream almost came true).”
눈앞에 아른거리던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감은 마지막 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끝났으니 집착해 봐야 부질없다는 달관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9월에 만 60세 생일을 맞는 톰 왓슨(미국)은 18번홀(파4)에서 파만 지켰어도 우승이었다. 메이저 대회 최고령 챔피언에 등극하며 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될 수 있었다. 티샷은 페어웨이 가운데 잘 떨어졌다. 고심 끝에 9번 대신 잡은 8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은 핀을 지나 그린 에지에 멈췄다. 퍼터로 굴린 공은 강하게 홀 왼쪽을 스쳐 지나갔다. 남은 거리는 2.4m. 넣으면 그걸로 승부는 끝이었다.
32년 전 바로 이 홀에서 ‘백주의 결투’라는 명장면을 연출하며 우승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힘없이 구르던 파 퍼트는 홀 오른쪽에 멈춰 섰다. 원치 않던 연장전에 들어간 왓슨의 몸과 마음은 고단한 60대로 돌아간 듯 무거워 보였다. 티샷이 심하게 흔들리며 서서히 무너졌다.
20일 스코틀랜드 에어셔의 턴베리 에일사코스(파70)에서 끝난 제138회 브리티시오픈.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왓슨은 4라운드에서 2타를 잃어 합계 2언더파 278타로 자신보다 24세 어린 스튜어트 싱크(36·미국)에게 동타를 허용한 뒤 4개 홀에서 치러진 연장에서 6타 차로 졌다.
연장 두 번째 홀까지 싱크에게 1타 차로 뒤진 왓슨은 17번홀(파5)에서 재앙을 맞았다. 다리 통증 탓에 드라이버 티샷이 훅이 나면서 왼쪽 깊은 러프에 빠졌고 4온 2퍼트로 2타를 잃었다. 이번 대회 75번째 홀 만에 처음 나온 더블보기였다. 반면 193cm의 장신 싱크는 가볍게 2온에 성공해 버디를 낚았다. 한 홀을 남기고 4타 차로 뒤진 왓슨에게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비록 왓슨은 ‘클라레 저그’에 입 맞추지는 못했지만 진작 뒷전으로 물러났을 나이라는 편견을 깨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한창 때의 파워 넘치는 스윙 대신 허리 부담을 줄이는 간결한 피니시로 변화를 줬어도 29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를 뽐내며 정교하게 페어웨이를 지켰다. 한때 어깨 부상에 시달렸고 지난해 엉덩이 수술까지 받았던 그는 “고통 없이 경기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기에 그의 투혼은 더욱 진한 감동을 전했다.
경기 후 왓슨은 “오늘이 나의 장례식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세계 랭킹이 1374위에서 104위까지 급상승한 그는 내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리는 브리티시오픈에서 고별전을 치를 계획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과 150만 달러를 챙긴 싱크는 ‘왓슨의 잔치에 재를 뿌린 악한’에 비유되기도 했다. 어릴 때 왓슨을 보며 브리티시오픈 챔피언을 꿈꿨다는 싱크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4라운드 18번홀에서 3.5m 버디 퍼트를 넣은 덕분에 영광을 차지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싱크 “왓슨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피셔 “60세에… 그는 진정한 전설”

■ 말말말
○ 스튜어트 싱크(제138회 브리티시오픈 챔피언)=“왓슨의 경기 장면을 TV로 보며 자랐다. 언젠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바랐다. 왓슨은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내가 그 현장을 함께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 안니카 소렌스탐(은퇴한 골프 여제)=“왓슨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한 일주일이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 로스 피셔(영국 프로골퍼)=“그는 진정한 전설이다. 60세라는 나이에 이런 경기를 할 수 있다니…. 내가 50대나 60대가 됐을 때도 젊은 선수들과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 세베 바예스테로스(52·스페인 프로골퍼)=“내년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다시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 리 웨스트우드(영국 프로골퍼)=“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여전히 뛰어난 선수다. 이런 코스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 루크 도널드(영국 프로골퍼)=“골프는 장타자에게 유리한 경기다. 하지만 왓슨은 정확하게 볼을 컨트롤 하며 우승 문턱까지 내달렸다.”



주요기사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