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도전 자랑스러웠는데 어째 이런 일이…”

  • 입력 2009년 7월 13일 03시 00분


고미영 씨 히말라야서 실족사
오빠 석균 씨 등 유족 표정

“미영아.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라.”

오빠는 막내 여동생이 히말라야에 오를 때마다 “힘내라”고 응원하면서도 “절대 무리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에서 하산하다 실족한 동생의 소식을 전해들은 고석균 씨(43·우덕세무법인 사무국장)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 그는 2남 4녀 중의 막내인 미영 씨를 끔찍이 아꼈다. ‘고미영을 사랑하는 모임(고사모)’에 회원으로도 가입했다. 만성 신부전증 때문에 동생과 함께 산행은 못했지만 부인 김점숙 씨(43), 바로 위 누나 미란 씨(48)와 함께 열렬히 응원해왔다.

“동생이 산행을 떠날 때마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산이 좋다는데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죠. 국민께 불굴의 도전정신을 보여준 동생이 자랑스러웠습니다. ”

고 씨는 항상 더 높은 곳을 찾아 떠나는 동생이 부러우면서 불안했다. 세계 최고봉에 오른 동생이 자랑스러운 한편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다 목숨을 잃은 등산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미영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시작될 때쯤 암벽과 빙벽을 타기 시작했어요. 잘 다니던 농림부에 사표를 던지고 등산에 모든 것을 걸었죠. 1990년 초 코오롱등산학교에 입학해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뭐든 잘할 거라 믿었고 박수를 쳐줬죠.”

그런 동생은 4년 전부터 고산 등정에 나섰다. 세계 최고의 산악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동생을 바라보는 오빠는 뿌듯했다.

고 씨는 “올해는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안타까울 뿐”이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의 실족 소식에 고 씨는 전북 부안군에 있던 아버지 고재은 씨(83)와 어머니 최부산 씨(68)를 서울 송파구 잠실 집으로 모셨다.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가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곁에서 지켜보기 위해서다. 고 씨의 부모는 막내딸의 실족 소식에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고미영 씨 누구인가
4년새 히말라야 고봉 11좌 등정
오은선 씨와 함께 여성 산악인 ‘빅 2’

고미영 씨(42·코오롱스포츠)는 오은선 씨(43·블랙야크)와 함께 국내 여성 산악계의 대표 주자다.

전북 부안군 출신인 그는 1985년 인성여고 졸업 후 이듬해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이 됐다. 1997년 오랜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 여성 스포츠 클라이밍(암벽 등반) 1인자 자리에 오른 그의 다음 목표는 고산 등반이었다. 20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6447m)를 시작으로 2006년 10월 히말라야 초오유(8201m) 등정에 성공했다. 2007년 5월에는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 그해 국내 여성 산악인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3개를 연속 등정하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에는 히말라야 마나슬루(8163m)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고 씨의 발걸음은 거칠 게 없었다. 올 들어 히말라야 마칼루(5월 1일·8463m), 칸첸중가(5월 18일·8603m), 다울라기리(6월 8일·8167m)를 정복한 뒤 10일 낭가파르바트(8126m)까지 오르며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개 중 11개 등정에 성공했다. 최근 고 씨는 오 씨와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 첫 완등 기록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14봉을 완등한 뒤 현재까지 10여 명이 뒤를 이었지만 아직 여성은 없다. 현재 고 씨가 11개, 오 씨는 12개 봉에 올랐다.

고 씨와 오 씨는 예정된 13개 봉 등정을 모두 성공하면 마지막 14번째 등정으로 안나푸르나(8091m)를 선택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올가을 ‘지현옥 10주기 추모 안나푸르나 원정대’에 나란히 참가해 함께 안나푸르나에 오르기로 했다. 하지만 고 씨의 사고로 두 사람의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게 됐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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