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 5기’ 박영석과 남서벽의 질긴 악연

  • 입력 2009년 5월 20일 21시 00분


박영석 대장과 에베레스트 남서벽과의 인연은 질기고도 험하다. 마칼루 서벽, 로체 남벽 등과 함께 히말라야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절벽으로 손꼽히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박 대장은 1991년 처음 남서벽을 봤을 때 "잘만하면 오를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박 대장은 그해 남서벽 등정에 실패한데 이어 2년 뒤인 1993년 또 고배를 마셨다. 평소 "원정 성공률이 50%는 된다"는 그의 호언이 무색한 연패였다.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달성한 그는 의기앙양하게 다시 남서벽 앞에 섰다. 그랜드슬램 달성 때문에 미뤄뒀던 '숙제'를 마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박 대장은 2007년에도 지난해에도 남서벽을 오르는데 실패했다. 실패보다는 성공에 익숙하던 그가 남서벽에서 네 번 연속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박 대장은 남서벽에 대해 단순한 실패 감정을 넘은 진한 아픔을 갖고 있다. 함께 오르려고 했던 후배 4명을 남서벽에 묻었기 때문이다. 1993년 남서벽에서 숨진 고 남원우, 안진섭 대원과 2007년 고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박 대장과 함께 1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동생 같은 후배들이었다.

이들이 숨진 날짜는 공교롭게도 모두 5월 16일. 박 대장이 1993년 남서벽에 실패한 뒤 방향을 돌려 남동릉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날도 같다.

박 대장은 20일 결국 에베레스트 남서벽 정상에 섰다. 4전 5기 만의 성공이자 1991년 첫 도전 이후 18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희준이와 현조 등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들에게 한 약속을 이제야 지켰습니다. 어깨가 가벼워진 것 같네요."

무전기를 통해 전해지는 박 대장의 음성은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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