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궁사 곽예지, 그 힘은 산만함?

  • 입력 2009년 5월 13일 08시 44분


천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1일 태릉에서 막을 내린 2009울산세계양궁선수권 선발전에서 여자부 1위에 오른 ‘4차원궁사’ 곽예지(17·대전체고2·사진)가 그렇다.

○무심무아무개념(無心無我無槪念), 곽예지의 ‘3無’

“곽예지는 완전, ‘무대뽀’야. 꼭 옛날 (박)성현이를 보는 것 같아.” 아테네올림픽 2관왕 박성현(26)을 조련한 서오석(52·이상 전북도청) 감독의 한 마디.

대표팀 막내지만 곽예지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선배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한다. 간간이 위태로운 선을 넘나들 정도. 그래서 종종 “귀엽지만, 개념 없다”는 말도 듣는다. 역으로 무개념은 선배들과의 경쟁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원동력이다.

대표팀 이은경(37·바르셀로나올림픽금메달리스트) 코치는 “곽예지는 무심무아의 상태로 활을 쏜다”고 했다. 초보 선수들은 동작의 세부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활시위를 당긴다. 이 코치는 “나는 선수시절, (동작에서 가장 부족한) 한 가지 포인트를 생각하면서 쐈는데 (곽)예지는 그냥 표적만 보고 당긴다”고 했다.

이론보다는 직관. 곽예지는 “사선에 서면 아무 생각이 없는 데요…”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다”던 요리의 천재처럼 곽예지는 그냥 표적 정중앙을 볼 뿐이다.

○곽예지 표 집중력의 역설

대표팀에서 곽예지는 ‘4차원’과 ‘산만함’의 대명사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17세 소녀가 이 노래는 어떻게 알았는지, 경기 중간에도 흥얼댄다. 선발전 중 짧은 휴식시간.

동료들과 장난을 치던 곽예지는 태릉양궁장 내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짧은 웹서핑. 영화배우 이준기의 사진을 보며 “잘 생겼다”는 감탄을 내뱉은 곽예지는 부랴부랴 경기장으로 나갔다. 곧바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까 싶지만, 화살은 10점 과녁에 꽂힌다.

양궁대표팀에서 선수들의 심리치료를 맡고 있는 홍성택(39) 박사는 “산만하기 때문에 오히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집중의 시간이 길어지면 피로감이 쌓이는데, 곽예지는 경기 중간 “까불면서”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고, 순간집중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암기력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 대표팀 구자청(42·현대 모비스) 총감독은 “화살을 놓는 순간, 손가락이 떨리는 기술적 문제만 보완하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며 밝은 미래를 예견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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