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우타거포 잡을 적임자

  • 입력 2009년 3월 21일 14시 26분


WBC 엔트리가 발표될 즈음 윤석민은 이번에 국가대표로 뽑혀 꼭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상대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지난해 방어율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정상급 우완 투수로 성장했지만, 이런 큰 대회를 통해 TV로만 보던 세계적인 선수와 같은 위치에서 승부를 해본다는 것은 승패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추억이고, 선수생활에도 큰 경험이 될 게 분명했다.

김인식 감독은 WBC 준결승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 그런 뜻을 가졌던 윤석민을 선발로 내세웠다. 비록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부상으로 WBC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가 출전하기로 했던 도미니카 공화국도 생각보다 일찍 떨어지는 바람에 만날 수 없게 됐지만, 미겔 카브레라, 매글리오 오됴네스가 버티고 있는 베네수엘라도 충분히 윤석민이 군침 흘릴만한 강팀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남미 팀이자, 어쩌면 마지막 미주지역 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류현진, 봉중근을 두고 대회 개막 직전까지 4선발 요원으로 분류됐던 윤석민을 이제는 지면 단판으로 끝나버리는 준결승전에 들이민 건 매우 파격적이면서도 다소 의외이다. 베네수엘라가 결승전을 염두에 둔 주력투수 아끼기를 할 만한 약체는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이번 대회에서만 무려 12개의 홈런을 때려낸 공격력 극강의 팀이다.

물론 컨디션 등 여러 가지 종합적인 판단에서 윤석민 카드를 내밀었겠지만, 아무래도 바비 어브레이유 외에 앞선 카브레라, 오됴네스 등이 우타자인 점을 감안해 우리도 우투수를 투입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굳이 결승전에 봉중근-류현진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닌 만큼 ‘우-좌-잠수함’ 이런 식의 투수 운용을 해왔던 김 감독도 경우에 따라 위기 상황이다 싶을 때 류현진을 투입해 결승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2홈런으로 국가별 홈런 2위, 타율 .309로 3위, 장타율에서도 3위를 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토론토 스카이돔에서 열린 지역 예선 C조에서 이탈리아를 7-0로 승자전에 오른 뒤, 케빈 유킬리스에게 투런홈런 등을 맞으며 미국에 6-15로 패했지만, 캐나다를 누르고 올라온 이탈리아를 다시 크게 격파하고, 미국과의 1,2위전에서 전의 패배를 설욕해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미국과의 첫 경기 패배는 이번 대회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패전 경기였다.

C조와 D조의 예선 통과자가 만난 본선 2조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2번이나 연파하며 쿠바 탈락 전까지 이번 대회 최대 파란을 일으켰던 네덜란드를 무너뜨리며 상승세를 잠재웠고, 승자전에서 카를로스 기엔의 선제 타점과 라몬 에르난데스의 솔로 홈런으로 2-0 승리를 거두며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1,2위 결정전에서 미국을 꺾어 조 1위로 본선 1조에서 2위가 된 우리와 결승을 두고 맞붙게 됐다. 수중전으로 치러진 순위 결정전에서 그 중에서도 비가 가장 많이 퍼부었던 2회에 미국 선발 제레미 거드리를 두들겨 순식간에 6점을 뽑아낸 게 결정적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이처럼 공격력에서 우리가 지금껏 만나왔던 일본, 멕시코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위력을 가진 무서운 팀이다. 기본적인 파워와 유연성에 남미 특유의 몰아치기가 더해지면 누가 나와도 그 바람을 잠재우기 힘든 강팀이다.

베네수엘라의 상대 투수는 사실상 카를로스 실바로 확정되었다. 실바는 뛰어난 싱커볼을 던지는 투수로 145km의 직구와 슬러브,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WBC 2경기에 나와 11이닝 1실점하며 방어율 0.82를 기록 중이다. 지역 예선 이탈리아 전에서 4이닝 무실점, 본선 네덜란드 전에서 7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대게의 싱커볼 투수가 그러하듯이 삼진보단 맞춰 잡은 위주의 피칭을 선보이는데 결국 얼마나 싱커에 당하지 않고 버티느냐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좌-우타자 할 것 없이 주로 바깥쪽 공략을 하는데다 투구폼도 간결한 편이어서 자칫 말려들기 시작하면 병살타로 경기를 그르칠까 두렵다.

막강한 선발진에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버티는 마무리까지. 전반적인 분석으로는 그나마 불펜이 조금 약하다는 평이지만, 준결승부터 한계 투구 수가 100개까지 늘어나는 만큼 선발을 투구 수에 못 이겨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 지연작전보다는 빠른 볼카운트에서 노리는 공을 공략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오히려 나을 것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이번 WBC 대회에서 4강에 오른 한국, 일본, 베네수엘라, 미국을 두고 마운드 싸움을 하는 방패의 아시아 야구와 타자 싸움을 하는 창의 미국식 야구를 빗대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격력은 이미 제 1회 이상으로 많이 성장했다. 이범호는 이 대회 홈런 공동 1위에 올라있고, 발 빠른 톱타자와 메이저리그도 탐내는 4번 타자까지 짜임새도 뛰어나다. 상대가 기세를 몰아 한 번에 몰아붙이는 전략을 세운다면 우리는 1회부터 9회까지 끊임없이 두드리는 은근한 전략으로 상대의 균열 시점을 찾는 야구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아침, 그들이 과연 어떤 야구를 보여줄지 기대가 모아진다.

엠엘비파크-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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