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너무 아쉬워요. 하지만 선수들 안전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죠.”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12일 오전 선수단과 함께 한라산 등반을 계획한 허 감독은 선수들보다 40분 정도 빨리 출발지인 한라산 성판악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선수들이 출발하기도 전에 산행 취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눈이 워낙 많이 내려 제대로 등반 장비를 갖추지 않은 선수들의 부상이 우려돼서다. 대신 성산 일출봉을 택했다.
○ 등정-가벼운 표정들
선수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허 감독은 “1994년 월드컵을 앞두고도 선수들과 한라산을 자주 왔어요. 당시 같이 있던 선수는 이운재(수원 삼성)밖에 없네요”라고 말했다. 이운재는 “그때는 사나흘에 한 번꼴로 올라갔어요. 오랜만에 올라가는가 싶었는데 아쉽네요”라며 웃었다.
일반인은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선수들은 11분 만에 성산 일출봉 정상에 올랐다.
○ 정상-장난기 발동
다 왔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선수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선수들은 쌓인 눈으로 눈 뭉치를 만들어 서로 던졌다. 기성용(FC 서울)이 던진 눈에 맞은 선배 정성훈(부산 아이파크)은 “방돌이. 너 방 빼”라고 소리쳤다. 둘은 같은 방을 쓰는 사이다.
장난을 치던 선수들의 기쁨도 잠시, 맞은편 봉우리까지 가자는 허 감독의 말에 입이 삐죽 나온 선수들도 보였다.
○ 2차 등정-사라진 웃음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내리막길은 군데군데 얼어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뛰던 선수들의 발놀림은 새색시 발걸음처럼 조심스러워졌다.
기성용은 “차라리 한라산으로 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상에 가까운 갈대밭에 이르자 선수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발이 눈밭에 푹푹 빠져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 정상 재정복-포기하지 마라
해안과 맞닿은 절벽 정상에 오르자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허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정상에 서니 좋지. 이 느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이팅’을 함께 외친 선수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했다.
○ 하산-또 다른 정상을 위해
오후 훈련이 없다는 소식에 선수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이근호(대구 FC)는 “한라산에 못 가 아쉬워요. 대신 아쉬운 마음은 그곳에 두고 왔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표팀을 본 관광객들의 사인과 촬영 공세도 이어졌다.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역시 이운재. 몰려드는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내려오면서 어깨동무도 하고 즐겁게 얘기도 하는 선수들은 마치 수학여행 온 학생들 같았다. 대표팀은 또 다른 정상에 도전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귀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