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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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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잖아요.”
“은메달인데요?”
“메달 진입이 목표였거든요.”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펜싱 플뢰레 개인전 은메달리스트 남현희(27)는 실패를 마음에 담지 않는다. 자신의 목표를 넘어선 것만으로 만족한다.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현희는 작다. 키 154cm. 하지만 야무지다. 그보다 10cm 이상 큰 유럽 선수들도 쩔쩔맨다. 전후좌우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빈틈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결승까지 왔다. 16강전 가브리엘라 바르가(헝가리), 8강전 스가와라 지에코(일본), 준결승전 조반나 트릴리니(이탈리아)를 차례로 꺾었다. 마지막에 한 번 졌지만 남현희는 한국 여자 펜싱이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44년 만에 첫 메달을 따냈다.
남현희가 결승에서 만난 마리아 발렌티나 베찰리(이탈리아)는 세계랭킹 1위. 2000년 시드니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2연패한 강적이다. 국제대회에서 그를 이긴 적이 없다. 넘기 힘든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현희는 “마음을 비우고 덤볐다”고 말했다.
결승전 1라운드. 남현희가 잠시 방심한 사이 베찰리에게 연속 공격을 허용하며 0-3으로 밀렸다. 하지만 2라운드에 3회 연속 찌르기를 성공시키며 3-4까지 쫓아갔다.
운명의 3라운드. 남현희는 59초를 남기고 번개처럼 빠른 공격을 성공시키며 4-4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베찰리와 거의 동시에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주심이 남현희의 득점을 인정해 5-4로 역전.
하지만 올림픽 2연패의 베찰리는 노련했다. 점수를 지키려는 남현희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29초를 남기고 뒤로 물러선 남현희의 몸통을 찔렀다. 5-5 동점.
남현희는 생각했다. ‘공격하는 순간 몸통에 빈 공간이 생기는 베찰리의 허점을 노리자.’
그러나 서른네 살의 노장은 남현희의 속마음을 읽고 있었다. 칼끝을 서로 부딪치며 탐색전을 하던 베찰리는 4초를 남기고 먼저 기습적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당황한 남현희는 이를 막지 못했다. 5-6 재역전패.
눈앞에서 대어를 놓친 남현희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밝아졌다. 올림픽 3연패를 이룬 베찰리를 포근히 안아줬다.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이었다.
“제가 제 꾀에 넘어갔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다음에 다시 만나 이기면 되죠.”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어요. 선수촌에서 유도 최민호 왕기춘, 역도 윤진희와 친해졌죠. 태릉선수촌에서 각자 운동만 하느라 지나쳤던 이들을 알게 돼 행복했어요.”
남현희는 올림픽 은메달이 명예회복의 기회가 됐다. 2006년 1월 태릉선수촌을 무단이탈해 쌍꺼풀 수술을 받아 6개월 자격정지를 받았던 기억을 지웠다.
그는 지난달 25일 귀국한 뒤에도 쉴 틈이 없다. 각종 인터뷰와 방송출연 요청이 쇄도한 탓이다.
하지만 분명한 선을 그었다. 소외된 펜싱을 알리기 위한 기회로 생각할 뿐 그의 본업은 펜싱선수다.
“조만간 다시 검을 잡아야죠. 10월에 전국체전이 있거든요. 더 큰 꿈요?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이죠.”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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