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골리앗’ 김영현 “언젠가 최홍만 넘는다”

  • 입력 2007년 10월 11일 1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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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은 겸손했다.

모래판의 황제로 군림한 뒤 낯선 이종격투기 K-1 무대에 새로 뛰어든 김영현은 자신이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기대 이상의 데뷔전”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만 그는 “배운 것을 반 밖에 써 먹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함께 씨름을 했던 최홍만이 현재 K-1의 톱 파이터로 우뚝 서 있는 것에 자극을 받을 만도 하지만 김영현은 “천천히 배워갈 뿐”이라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최홍만을 꼭 넘어서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사실 김영현은 씨름 선수 시절부터 매우 조용한 선수였다. 인터뷰 때는 최홍만처럼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늘 실력으로 보여줬다. 씨름판에서 통산 463전 355승에 천하장사 3회와 백두장사 및 지역장사 등을 40여 차례나 석권한 그였지만 단 한 번도 거만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K-1으로 무대를 옮긴 김영현은 지난달 29일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서울대회에서 격투가로 첫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김영현은 일본의 백전노장 야나기사와 류우시를 맞아 현란한 콤비네이션 공격은 물론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판정승을 거뒀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시합을 보여준 것에 전문가들과 격투기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대단하다는 반응 일색.

9월 첫 시합 후 한동안 몸을 추슬렀던 김영현은 12월 K-1 다이너마이트 대회를 목표로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스포츠동아는 지난 10일 신림동에 위치한 태웅회관에서 김영현 선수를 만났다.

Q. 지난주에 병원에 다녔다고 들었다. 시합 후 부상이 있나?

김영현(이하 김) : 다친 것이 아니라 시합 끝나고 다리에 조금 통증이 있었다. 훈련할 때는 다리에 보호 장구를 착용해 느끼지 못했는데 시합을 해보니 내가 타격을 하면서도 통증이 생기더라.

Q. 첫 시합 후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김 : 다들 기뻐한다. 오랜만에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승리를 거두게 되어 많이 좋아하더라.

Q. 야나기사와와의 K-1 첫 데뷔전을 치르고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첫 경기에 대한 소감은?

김 : 일단 첫 시합이라 그런지 긴장도 많이 됐고 준비한 것을 시합 때 충분히 써 먹지 못한 것이 아쉽다. 느낀 점이 많았던 시합이었다.

Q. 배운 것을 얼마나 활용했다고 생각하나?

김 : 반도 못 썼다. 준비는 참 많이 했는데...

Q. 첫 시합 때 보니 원투 스트레이트와 킥 공격이 이어지는 콤비네이션이 매우 좋았다. 훈련 때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건가?

김 : 그렇다. 훈련 때 많이 신경 쓴 부분이다. 하지만 시합 때 그 부분이 조금 단축됐다. 예를 들어 펀치도 원투 정도가 아니라 4차례 이상 나가고 킥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실전에서 긴장하면서 다소 공격이 짧아진 것 같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훈련도 많이 했는데 시합 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 같다.

Q. 3라운드를 소화하면서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나?

김 : 사실 첫 시합에서 연장까지 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지나치게 체력 안배를 한 것 같다. 힘을 너무 아낀 탓에 가진 힘을 다 쓰지도 못했다. 그 점이 참 후회된다.

Q. 그 밖에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무엇을 느꼈나?

김 : 너무 많다. 우선 스피드와 파워. 그 외에도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Q. 다음 대회를 앞두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할 생각인가?

김 : 스피드와 파워를 기르는 부분은 물론 콤비네이션도 좀 더 보충해야 한다.

지금은 후발주자, 언젠가는 최홍만 추월

Q. 아무래도 최홍만 선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김영현 선수의 첫 경기를 보고 “최홍만의 데뷔전 때보다 좋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에 대한 소감은?

김 : 내가 격투기 데뷔를 준비하면서 최홍만 선수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만 기본기를 충분히 익히고 첫 시합을 치르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관장(태웅회관 공선택 관장)님도 그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다. 결과적으로 기본기를 착실히 연마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

Q. 씨름선수 시절에는 전적 면에서 김영현 선수가 최홍만 선수를 능가했다. 그러나 지금 K-1에서는 최홍만 선수가 엄연히 선배이고 한 수 위임이 틀림없다. 일종의 자존심 문제는 없나?

김 : 일단 제가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는 당연한 것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 최홍만 선수를 넘어서겠다.

Q. 현재 K-1 디팬딩 챔피언 세미 슐츠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슐츠의 어떤 모습을 닮고 싶나?

김 : 그의 경기 방식과 경기를 풀어가는 운영 능력, 그리고 빠른 스피드 등을 본받고 싶다.

Q. 일부에서는 슐츠 선수의 경기 스타일이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김 : 물론 슐츠의 장점에 저만의 스타일을 가미해야 한다. 슐츠보다는 좀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그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지 전체적인 스타일까지 따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Q. 이번 서울대회에서 K-1의 정상급 선수들이 경기 하는 것을 직접 보고 어떤 점을 느꼈나?

김: 동경하던 선수들을 실제로 보니 색다르고 신기했다. 그런 선수들과 시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Q. 한번 붙어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김 : 더 시간을 들여서 노력한 연후에 결국에는 세미 슐츠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

Q. 슐츠 외에 좋아하는 선수는 없나?

김 : 모든 선수들을 다 존경한다. K-1 진출을 결정하기 전부터 제롬 르 밴너를 참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옆에서 보니 더 대단한 것 같다. 언젠가 밴너와 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과 흥분이 된다.

Q. 대회가 끝나고 쫑파티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밴너 등 여러 선수들과 이야기도 해봤나? 최홍만과도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

김 : 아직 신인이라 선수들을 잘 몰랐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이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최홍만과는 경황이 없어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Q. 현재 최홍만 외에 씨름 선수 출신으로 격투기 무대를 밟은 선수들이 현재까지는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 지금 내 입장에서 누구를 평가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선수들의 시합을 보면서 내가 더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고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Q. 현재 씨름하는 후배들이 격투기로 전향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김 : 나는 씨름으로 이름을 알린 선수고 씨름이 어떻게든 다시 부흥하길 바란다. 나 같은 경우는 팀이 다 해체되는 바람에 이렇게 격투기로 넘어오게 됐지만 프로팀이 다시 생기고 씨름판이 살아난다면 후배들이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Q. 언젠가 다시 씨름을 할 의향은 있나?

김 : 어차피 격투기에 발을 내 딛었기 때문에 이 운동에서 끝을 보고 싶다. 내 나이도 나이인 만큼 남은 선수 생활을 K-1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Q. 종합 격투기 쪽은 생각해봤나?

김 : 종합은 생각하지 않았고 일단은 입식타격에 전념하고 싶다. 입식타격에서 성공을 하고 난 연후에 생각해 볼 일이다.

Q. 미자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김 : 모자란 저를 격려해 주시고 첫 시합 때도 열렬히 응원해 주셔서 저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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