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을 따낸 이지은(17·전남제일고·사진)은 공동취재 구역에서 수영모를 벗지 않았다. 시상식 때도 마찬가지. 하얀 바탕에 태극마크가 뚜렷한 수영모를 그대로 쓰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7세 때 원형탈모증을 앓은 이지은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온몸의 털이 빠져 병원에 갔더니 전신탈모증으로 발전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러니 항상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지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했다. 교내에서 수영 클럽 모집 광고를 보고 왠지 마음이 끌렸는데 막상 물 속에 들어가니 타고난 ‘물개’였다.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4학년 때는 소년체전 전남 대표로 뽑혔다.
하지만 6학년 때 전신탈모증 판정을 받으면서 운동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흔들리는 이지은을 잡은 것은 엄마의 한마디였다.
“수영장에서는 모자를 쓸 수 있으니까 오히려 수영을 계속하는 게 낫지 않겠니?”
용기를 얻은 이지은은 더욱 열심히 수영에 전념했고 초등학교 마지막 소년체전에선 자유형 50m와 100m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중학교 때 사춘기가 찾아오자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물 속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빠르다는 자신감으로 탈모증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이지은은 마침내 2004년 10월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해 11월 마카오 동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전신탈모증은 약을 먹으면 나아질 수 있지만 도핑테스트에 걸릴까 봐 전혀 입에 대지 못했다는 이지은. 그는 “더 열심히 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도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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