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D-30/유도 73㎏급 이원희 ‘金’을 위한 전쟁

  • 입력 2004년 7월 13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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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올림픽까지 남은 기간은 한달. 한국 남자 유도의 간판 스타 이원희는 요즘 금메달의 꿈을 꾼다. 그는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국내최다연승(48연승) 신기록의 주인공. 훈련으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외우며 다시 힘을 낸다. ‘강하고 담대하라.‘-박주일기자
아테네올림픽까지 남은 기간은 한달. 한국 남자 유도의 간판 스타 이원희는 요즘 금메달의 꿈을 꾼다. 그는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국내최다연승(48연승) 신기록의 주인공. 훈련으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외우며 다시 힘을 낸다. ‘강하고 담대하라.‘-박주일기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유도 ‘한판승의 마술사’ 이원희(23·남자 73kg급·한국마사회). 자타가 인정하는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후보 1순위인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주위의 기대가 큰 만큼 중압감도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유도 ‘한판승의 마술사’ 이원희(23·남자 73kg급·한국마사회). 자타가 인정하는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후보 1순위인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주위의 기대가 큰 만큼 중압감도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12일 오전 5시30분 태릉선수촌.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리자 이원희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곧바로 방바닥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잠을 쫓은 뒤 창문을 여니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 “휴, 다행이다.” 왜? 비 오는 날은 지옥 같은 산악훈련이 없기 때문. 대신하는 체육관 실내훈련은 그래도 할 만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승리관에 도착해 운동화 끈을 조이는 사이 ‘호랑이 삼총사’ 권성세 감독, 윤용발 코치, 전기영 트레이너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성중 시절부터 지도를 받은 권 감독은 이젠 ‘아버지’ 같지만 훈련 때만은 피도 눈물도 없다.

동료들과 함께 간단히 몸을 푼 뒤 체육관을 돌기 시작한다. 20바퀴째를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선수들이 속도를 높인다. 곁에서 지켜보던 기자의 눈이 핑핑 돌 정도. 권 감독이 ‘가벼운 조깅’이라고 표현한 구보는 15분간 30바퀴를 돈 뒤 끝났다.

훈련은 이때부터가 시작. 뒷짐 지고 모둠발 뛰기, 동료선수 들쳐 업고 왕복하기, 의자를 허들삼아 뜀박질하기….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훈련은 한마디로 ‘죽음의 코스’.

“격투기 선수들은 이렇게 훈련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선수 다 잡겠다”는 기자의 걱정에 “이건 산악훈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며 권 감독이 던진 말이다.

오전 8시 식사시간. 이원희는 식사량이 많지 않고 육류보다는 김치찌개 같은 토속음식을 즐긴다. 하지만 전날 잠을 설친 데다 지옥 같은 아침운동에 진이 빠졌는지 영 입맛이 없다. 밥을 조금 먹다가 숟가락을 놓더니 금세 우유와 과일로 손이 간다.

식사 뒤 맞은 휴식시간에 이원희는 선수촌 인근 한의원을 찾는다. 침을 맞으며 뭉친 근육을 풀고 팔다리의 자잘한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꿈속에도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상대선수들의 몸놀림

웨이트트레이닝이 끝난 뒤 오후 2시부터는 기술훈련. 이날은 훈련 파트너로 한국마사회와 용인대 선수들이 선수촌에 왔다. 힘 좋은 유럽과 남미 선수들은 굳히기가 유독 강하다. ‘굳히기 국내 최고수’ 윤동식 마사회 플레잉코치와 맞잡았다. 역시 고수다. 10여분을 발버둥쳐도 끝내 윤 코치의 굳히기에서 풀려날 수 없다.

이어 자유연습. 용인대 후배인 황석호 윤지섭과 번갈아 대련을 하는데 권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안다리걸기에서 상대를 넘기는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 권 감독은 조금만 느슨하다 싶으면 귀신같이 알아낸다. 저녁 식사 후. 졸음이 온다. 하지만 오후 8시부터 비디오 분석 시간. 올림픽에 출전하는 각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며 전력을 분석한다. 얼마나 많이 반복해 봤는지 화면에서 비가 내린다. 이원희는 틈만 나면 눈을 감고 머릿속에 상대선수들의 움직임을 되살리며 허점을 연구한다. 바로 ‘이미지트레이닝’. 그렇게 보고 또 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는데도 이원희는 “상대의 움직임이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아직 멀었다”며 머리를 친다.

오후 10시. 이제 고단한 몸을 누일 시간. 이원희는 성경을 꺼내 잠언 한 구절을 읽는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원희가 가장 좋아하는 여호수아 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트레이너 전기영

한국 남자유도대표팀 전기영 트레이너는 요즘 이원희를 보면 8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린 전 트레이너는 당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을 꿈꾸며 주위의 엄청난 관심 속에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대로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는 노골드에 그쳤다. 그리고 다시 4년 뒤에 열리는 아테네 올림픽. 이원희는 8년 만에 전 트레이너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원희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그의 복잡한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전 트레이너는 “무엇보다도 마무리 단계에서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서 보듯이 기량은 이미 절정에 올라있는 상태. 올림픽까지의 과제는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는 또 “원희는 워낙 근성이 있다보니까 훈련할 때 뜻대로 안되면 짜증을 내곤 하는데 앞으로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원희가 최근 두 차례 연장전에서 패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약점을 해결하는 게 숙제입니다. 체력을 잘 배분해야 하고 초반 오버페이스보다는 경기시간 5분을 적절히 활용하는 운영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원희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전 코치는 “지나고 보니 인터뷰가 몰려들던 그때가 그립지만 지금 원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면서 “자신감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훈련파트너 윤지섭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후보 이원희의 옆에는 묵묵히 땀을 흘리는 훈련 파트너가 있다.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이원희의 용인대 3년 후배인 윤지섭(20·사진). 6월부터 태릉선수촌에 들어와 이원희와 똑같은 스케줄로 단내 나는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는 이 없다. 그러니 아테네 올림픽 목표도 있을 리 없다. 다만 선배가 ‘올림픽 영광’을 안는 데 도우미로 만족할 뿐.

“개인적으론 영광입니다. 원희형과 함께 운동하고 생활하다 보면 배울 게 많거든요. 피곤할 텐데도 매일 밤 비디오 연구를 빼놓지 않을 만큼 성실하고요.”

그렇다고 속상할 때가 없을까.

“차별대우를 받다보면 솔직히 부러운 적이 많아요.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파트너가 아닌 대표 1진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뜁니다.”

윤지섭은 자신이 마치 올림픽대표라도 된 것처럼 한순간도 훈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분위기 메이커로 훈련 때 힘차게 기합을 넣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언젠가는 제가 반드시 원희형 자리에 있을 겁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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