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할수 있다” ´축구신화´로 패배-냉소주의 날려보내

  • 입력 2002년 6월 24일 18시 43분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룬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쾌거가 국민의 의식을 바꿔 놓고 있다. ‘한국인은 안 돼’ ‘한국이 되겠어’라던 기존의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의식이 급격히 사라지고 대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18일 이탈리아전 때 1-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경기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중에서 ‘이제 졌다’며 포기하는 사람은 눈에 별로 띄지 않았다.

대학생 백청하씨(23·여·경기 용인시)는 “예전 같으면 ‘졌네’하고 자리를 떴겠지만 이제는 정반대”라며 “모두가 ‘괜찮아’, ‘할 수 있어’를 외치며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대운씨(31·경기 고양시)는 “포르투갈전 때만 해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경기를 계속 보면서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믿게 됐고 이제 우승까지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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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자신감은 최근 일고 있는 판정 시비에 대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동아닷컴에 ‘이창원’이란 ID로 글을 올린 네티즌은 “우리는 실력으로 골을 넣어 이탈리아를 이긴 것”이라며 “경기 장면을 찍은 자료로 우리의 승리를 당당하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심희재씨(25·서울 성북구)는 “과거에는 중요한 고비 고비마다 ‘우리는 역시 안 돼’라는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었다”며 “한국팀의 선전이 축구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 대한 자신감은 길거리 응원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서서 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회사원 정찬일씨(37·서울 서대문구)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축구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며 “부지불식간에 모두가 성과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한국인도 세계 무대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함으로써 한국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신뢰하게 됐다는 점에서 승리에 대한 단순한 도취와는 분명 다르다고 진단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金炅一·사회학 전공) 교수는 “4강 진출은 우리도 실력을 키우면 선진국과 겨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며 “일본에 의해 주입되고 선진국들과의 경쟁 속에서 더욱 강화됐던 패배주의를 이제는 극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민식(金民植) 교수는 “이번 월드컵으로 국가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크게 변화된 것 같다”며 “이러한 자신감은 우리 모두의 국가관과 삶의 자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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