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거미 손’ 빛났다

이운재(29·수원 삼성)의 ‘안정감’을 믿은 히딩크의 선택은 역시 옳았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이 열린 18일 이운재의 모교인 청주상고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수업을 진행했다. 제자이자 선배인 이운재가 선발 출장해 한국의 8강 진출 선봉장이 돼 줄 것을 기원하는 의미.

스승과 후배들의 뜻이 하늘에 닿았을까.

이운재는 이날 ‘아주리군단’ 이탈리아의 대포알 슈팅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한국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이날 이탈리아의 슈팅은 모두 11개. 전반 17분 골로 연결된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첫 번째 헤딩슛은 불가항력이었다. 골키퍼와 채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꺾어져 들어오는 슛을 막기란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

그러나 첫 골을 허용한 것이 못내 자신의 실수탓이라고 여겼던지 이후 이운재는 ‘사냥감을 쫓는 한 마리 호랑이’였다. 첫 골 허용 이후에도 골대를 향한 유효슈팅만 4개가 쏟아졌지만 모두 이운재의 거미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연장 후반 10분에는 설기현의 수비 실수로 젠나로 가투소에게 단독 찬스를 허용하며 결정적인 실점 위기에 몰렸으나 이운재가 침착하게 슈팅을 쳐내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이 선방은 곧바로 역전극의 기폭제가 됐다.

타고난 성실성과 안정된 수비력으로 김병지를 제치고 한국의 대표수문장으로 자리잡은 이운재. 그가 있어 한국은 8강을 넘어 4강, 우승까지 꿈꿀 수 있다.

이운재는 예선 1골에 이어 이날 1골을 허용하며 4경기에서 단 2골만 허용하는 철벽 수비로 올리버 칸(독일), 데이비드 시먼(잉글랜드·이상 1골)과 함께 최고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야신상의 강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대전〓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