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가, 이 함성 이 열정…”

  • 입력 2002년 6월 19일 01시 56분


‘코리아의 힘’ 기적을 쏘았다-원대연기자
‘코리아의 힘’ 기적을 쏘았다-원대연기자
한국 축구의 새 역사가 이뤄진 2002년 6월 18일, 거리 응원의 ‘메카’가 된 서울 세종로 거리. 새벽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이 거리는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이 터진 오후 10시53분 절정을 맞으며 마침내 폭발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이른 새벽. 얼굴에 각종 페이스 페인팅으로 치장한 10여명의 ‘붉은 악마’들이 동아일보 대형 전광판 맞은편 인도에 모여앉아 축제의 아침을 열었다.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한숨도 자지 않고 기차로 충남 당진에서 친구들과 함께 새벽 4시에 서울에 도착했다는 대학생 정치훈씨(20).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도 우리 붉은 악마는 이곳 광화문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는 정씨는 “거리 응원은 광화문이 원조이며 지금도 전국 거리 응원의 중심은 이곳 광화문”이라며 한국팀 파이팅을 외쳤다.

오전 9시. 무대 설치에 여념이 없는 행사 진행요원들, 목 좋은 자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사람들이 몰려오길 기다리는 노점상 할머니, 최고의 ‘거리 시청률’을 기록해온 동아일보 전광판(LG전자 제작)이 잘 보이는 음식점 2층 창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음식점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거리는 분주해졌다.

서서히 거리를 붉게 물들여가던 응원단은 정오를 지나면서 1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오후 3시, 인도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응원단은 차도로 내려서기 시작했고 차량을 통제하느라 경찰관들의 몸놀림도 빨라졌다.

오후 6시. 신문로와 종로를 잇는 왕복 8차로는 50만명이 넘는 응원 인파에 완전히 점령됐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세종로는 흥분과 긴장감으로 활시위를 당긴 듯 팽팽해졌다. 한국팀의 8강 진출을 기원하며 외쳐대는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는 지축을 뒤흔들었다. 오후 8시반 경기 시작 직전에는 55만여명이 부르는 애국가 소리에 거리는 묻혀버렸다.

한국이 선취골을 내준 뒤 거리는 응원단이 내쉬는 탄식과 한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후반 종료 직전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거리는 기사회생. 마침내 연장 후반 안정환 선수의 머리를 떠난 공이 승리를 결정짓는 순간, 거리는 폭발하는 함성과 폭죽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오후 11시. 경기는 끝났지만 거리는 식을 줄 몰랐다.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리를 뜰 생각도 하지 않고 끝없이 환호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는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계속됐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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