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붉은악마 열풍에 거부감 줄고 ‘승리의 色’으로

  • 입력 2002년 6월 16일 23시 09분


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가 한국 사회에 잠재된 붉은색에 대한 거부감을 씻어내고 있다. 남북의 이념 갈등으로 인해 한국 현대사에서 금기시됐던 붉은색이 월드컵 응원 열풍에 힘입어 승리의 염원이 응축된 색깔로 바뀌고 있는 것.

한국 경기가 열릴 때마다 붉은 악마들이 모인 전국 곳곳의 길거리 응원단은 ‘붉은 바다’를 이뤘다. 특히 이들의 붉은 티셔츠에 적힌 ‘비 더 레즈(Be The Reds)’는 1980년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주장. ‘레드’라는 말이 ‘빨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원 이원영씨(34)는 “붉은 티셔츠만 입으면 나이를 불문하고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서의 일체감을 느꼈다”며 ‘레즈’의 탈이념을 뚜렷이 밝혔다. 또 김현희씨(21·충북대)는 “젊은 세대는 원래 붉은색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뿐더러 월드컵을 계기로 붉은색은 애국과 젊음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고 말했다.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붉은색 열풍은 한국 사회가 붉음에 대한 묘한 거부감을 집단적으로 뛰어넘은 문화사적 쾌거”라며 “붉은색은 ‘베이징이나 평양만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이번 기회에 우리의 집단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장년층 일부에서는 ‘왜 하필 빨간색이냐’며 거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대기업 임원인 이모씨(51)는 “레드 콤플렉스의 레드는 특정 이념이 포함된 것이고 ‘붉은 악마’의 레드는 사심 없는 한국인의 염원을 담은 색이기 때문에 분명히 구별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박광택씨는 “월드컵 열풍이 더 이상 붉은색에 이념을 덧씌우지 않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도 “이것이 또 다른 획일로 번지거나, 한국 사회가 가져야 할 이념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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