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가던날 '옥에 티' "8강 가는 날은 더 성숙한 응원을"

  • 입력 2002년 6월 15일 22시 33분


한국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14일 밤 거리응원에 나선 대부분의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일부 젊은이들이 차에 매달린 채 경적을 울리며 곡예하듯 거리를 질주했고 새벽까지 도로를 점거한 채 차량을 파손하는 등의 일탈 행동을 보여 길거리 응원의 명성을 퇴색시켰다.

▽일탈행위〓15일 오전 1시경 서울 강남역 주변 한남대교에서 양재역 방향 2㎞ 구간은 경기가 끝난 직후 몰려든 1만여명의 응원단으로 교통이 통제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갑자기 모여든 응원단 속에 지나던 차량 100여대가 2시간 동안 갇혀버렸고 응원단은 폭죽을 쏘아올리고 스프레이식 모기약을 뿌린 뒤 불을 붙여 흔들기도 했다. 물병 등을 도로 위에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2시간가량 응원 인파에 갇혀버린 버스 운전사 김수길씨(61)는 “온 국민의 염원인 16강 진출이 확정돼 기쁘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며 씁쓸해 했다.

경찰은 2개 중대를 급파해 응원단이 몰려있는 곳을 둘러싼 채 응원단의 일탈행동을 간신히 막았고 오전 2시가 넘어서야 응원단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술에 취한 일부 응원단은 강남역 네거리로 진출하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과 종로구 대학로 일대도 거리로 뛰쳐나온 젊은이들로 홍역을 앓기는 마찬가지.

응원 인파에 묻힌 신길운수 소속 버스는 60여명의 젊은이들이 버스 위로 뛰어올라가 상의를 벗고 응원가를 부르는 바람에 백미러와 지붕 위 에어컨 등이 파손되기도 했다.

또 응원단은 정차된 차량을 양쪽에서 마구 흔들어대고 차 지붕과 보닛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는 바람에 운전자들이 공포에 질리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와 압구정동, 대학로, 신촌 주변 도로는 수백대의 응원 차량들과 응원단으로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달리는 차량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미는 것은 부지기수고 열어 놓은 트렁크에 타거나 아예 차량 보닛이나 지붕 위에 올라선 채 괴성을 지르며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밤새 경적을 울려대며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과 오토바이들로 인근 주민들은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안모씨(32·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밤새도록 차량 경적과 오토바이 굉음에 시달렸다”며 “온 국민의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들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전사고〓이날 서울에서는 거리응원전을 벌이다 어깨가 빠지거나 팔목이 골절되는 등의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세종로 네거리와 시청 앞에서는 거리응원을 하며 박수를 치고 태극기를 흔들다 어깨가 탈구된 20대 남성 2명과 오른쪽팔목이 골절된 여성 1명이 발생,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또 올림픽공원 경륜경기장에서는 20대 여성이 옆사람 팔꿈치에 밀려 끼고 있던 안경이 깨지면서 오른쪽 눈썹 위에 안경테가 박혀 구급차로 이송되기도 했다.

세종로 네거리에서는 60대 남성이 고혈압 증세를 보여 현장 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조치를 받았고, 응원에 열중한 나머지 동반한 어린이를 잃어버린 사례도 4건이나 발생해 소방방재본부의 도움을 받아 찾기도 했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시청 앞, 세종로 네거리 등 14곳에서 △병원이송 11건 △응급조치 67건 △미아보호 4건 등 모두 85건의 구급 및 안전활동이 이뤄졌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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