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침묵… 환호

  • 입력 2002년 6월 10일 23시 02분


빗줄기도 못식힌 서울시청앞 붉은 열기
빗줄기도 못식힌 서울시청앞 붉은 열기

비겼지만 감동은 첫 경기 폴란드전보다 오히려 컸다. 90분 내내 가슴을 졸이던 끝에 얻어낸 꿀맛 같은 무승부였다.

시작은 불길했다.

경기 전 가는 비를 흩뿌렸던 하늘은 먹구름을 잔뜩 머금은 채 무더위를 기대했던 한국의 소망을 비켜나갔고 선수들의 몸도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 22분, 상대 문전에서 공중볼을 다투던 황선홍이 프랭키 헤지덕의 머리에 부딪혀 오른쪽 눈위가 찢어졌다. 황선홍이 피를 흘리며 터치라인 밖으로 걸어나간 사이 한국은 잠시 집중력을 잃었고 미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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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후인 전반 24분. 한국 수비라인이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 왼쪽 미드필드에서 존 오브라이언의 한 템포 빠른 패스가 한국 문전을 향했다. 홍명보와 이을용이 몸을 돌리는 순간 어느새 볼은 번개처럼 돌아나간 클린트 매시스의 오른발에 걸려 멈춰 섰다. 지체없이 터진 왼발슛. 볼은 한국 골네트 안 오른쪽을 출렁였고 붉은 악마의 함성은 숨죽인 듯 잦아들었다. 미국의 1-0 리드. 압박붕대를 머리에 두른 채 터치라인에서 주심의 사인을 기다리던 황선홍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국의 실점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한국의 반격은 매서웠다. 전반 40분 황선홍이 페널티지역에서 제프 어구스의 파울을 유도, 일찌감치 동점골 찬스를 맞았다. 하지만 이날 한국을 웃기고 울린 이을용의 킥은 상대 콜키퍼 브래드 프리덜의 손에 걸리며 한국의 행운을 외면했다.

후반 들어 한국은 이천수 안정환 최용수 등 공격수를 잇따라 교체투입하며 추격의 고삐를 죄었다. 한국의 파상 공세에 좀처럼 허점을 내주지 않던 미국 수비라인의 발은 한국의 파상 공세에 차츰 무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국은 월드컵 데뷔골을 기록한 안정환과 페널티킥 찬스를 놓친 이을용의 속죄 어시스트에 힘입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주연 안정환, 조연 이을용, 연출 붉은악마의 멋진 작품이었다.

대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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