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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13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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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대한민국은 ‘축구의 나라’였다. 이날만은 축구가 국기(國技)였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으로 좀처럼 얼굴 펼 날이 없었던 국민들은 이를 단숨에 날려버릴 승전보를 기다리며 13일 오후부터 일찌감치 귀가, TV앞에 모여 앉았다.
13일 해가 저물자 서울 시내 중심가의 차량 통행량은 평소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한산했으며 전국의 고속도로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행락차량이 크게 감소한 모습이었다.
이날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은 오후2시 현재 9만4천여대로 평소 주말에 비해 1만여대가 줄었다. 한국도로공사 종합상황실측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월드컵축구 때문에 나들이 인파가 줄어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소 붐비던 서울 강남 일대 유흥가도 ‘월드컵축구’의 위세에 눌려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초저녁에 주점과 노래방 등에 몰렸던 손님들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귀가를 서둘렀으며 일부 업소는 아예 초저녁부터 문을 닫아버렸다.
서울 한남동 A주점 주인 박모씨(47·여)는 “월드컵 기간 중에는 주당(酒黨)도 축구당(蹴球黨)이 된다”며 “한국팀이 연전연승해서 전반적으로 ‘술마실 분위기’가 된다면 길게 보아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흥업소들과는 반대로 동네 치킨집 편의점 등은 밤늦게까지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 덕분에 매출이 늘어나는 등 ‘반짝 특수’를 누렸다.
대형스크린 중계를 연인 친구와 함께 보기 위해 극장과 놀이공원 등을 찾아 나선 젊은 층도 적지 않았다. 용인 에버랜드 자동차 전용경주장에서는 13일 오후 8시반부터 14일 오전2시반까지 유승준 디바 등 인기가수들이 응원콘서트를 펼친 뒤 중계를 지켜봤다.
서울 허리우드극장이 준비한 축구중계와 심야영화 패키지 상품은 판매당일 1천1백여석이 모두 매진됐다.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는 주한 멕시코인 80여명과 한국인 등 6백여명이 멀티비전을 통해 각각 자국을 응원하며 우의를 나눴다.
또한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전광판앞 광장 등 도심의 대형 스크린앞에서는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즉석 응원전’을 펼쳤다.
누구보다 애를 태운 것은 선수들의 가족. 이상윤선수의 가족은 어머니 김정숙씨(60)가 승리를 기원하는 금식기도를 하다 끝내 병원에 입원하자 이날 밤 병실에 모여 경기를 지켜봤다.
숙명여대 축구선수 출신으로 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에도 참가했던 노정윤선수의 부인 유영옥씨(27)는 “감기가 들었다는데 컨디션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걱정”이라고 조바심을 태웠다.
차범근 감독의 부인 오은미씨(43)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며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겸허히 기다리겠다”고 코멘트.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