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상담에 치료 프로그램 연계
중학생-고등학생 109명 도움받아
대전경찰청이 시작, 전국 확산
고교생 김모 군(18)은 어느 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온라인 도박을 접했다. 호기심에 시작한 도박은 금세 중독으로 번졌다. 부모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은행 애플리케이션에서 돈을 빼내는 등 1년 4개월 동안 2000만 원 넘게 잃었다. 김 군은 결국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처벌을 받더라도 도박을 끊고 싶다”며 대전경찰청이 운영하는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에 본인을 신고했다. 이후 경찰과 전문기관의 지원을 받아 치료와 교화를 병행한 끝에 중독에서 벗어났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뒤 올해 4월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대전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전국 최초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제’를 도입한 뒤 올해 10월까지 총 109건의 신고를 접수했다고 5일 밝혔다. 중학생 80명, 고등학생 29명으로, 이들이 도박에 사용한 금액은 최소 1만 원에서 최대 9000만 원에 달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보호자와 함께 면담을 진행하고, 전문가 및 전문기관과 연계해 치료·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처벌보다 교화를 거쳐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109명 중 40명이 상담을 통해 개선 가능성을 인정받아 선도심사위원회에서 훈방 등 경미한 조치를 받았다. 7명은 전문기관 교육을 이수했다. 김 군을 비롯해 검찰이나 가정법원에 송치된 18명은 기소유예 등 비교적 경미한 처분을 받고 일상에 복귀했다. 남은 51명은 상담 또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학교전담경찰관(SPO)을 중심으로 청소년 도박 예방 활동이 이뤄졌지만, 대부분 단순 계도에 그쳐 실질적 신고나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자진신고제는 청소년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처벌보다 교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승희 대전·충남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경찰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신뢰를 주고, 스스로 신고한 아이들이 치료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이 제도를 처음 고안한 대전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유혜미 경사는 “불법 도박으로 입건된 청소년과 그 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을 수차례 봤다”며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경찰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전청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경기남부청, 세종청, 천안서북서, 익산서 등이 벤치마킹에 나섰고, 충북경찰청과 육군본부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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