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주 불국사를 찾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안내 스님의 역사적 배경 설명을 듣고 있다. 경북도 제공
“놀랍네요. 아무리 봐도 모양이 흥미로워요. 조형미가 세계적 수준입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불국사를 찾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석가탑과 다보탑 앞에서 “어메이징(놀랍다)”을 연발했다. 탑 기단을 살피며 “1000년 전 신라인들은 이 큰 돌을 어떻게 산 위로 옮겼을까” 물었다. APEC 준비기획단 직원이 다보탑이 새겨진 10원짜리 동전을 보여주자 “이 탑이 그 탑이냐”며 놀라워했다.
다음 날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특별기조연설을 위해 경주를 찾은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날 문화탐방 일정으로 불국사와 산업시설 등을 둘러봤다. APEC 기간 천년고도 경주에는 30만 이상의 외국인 방문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측된다.
● “불국사와 두 탑 장관”, “아시아의 아테네 같다”
불가리아 출신 경제학자로 2019년부터 IMF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한국 방문 첫날 탐방 일정 내내 감탄사를 쏟아냈다. 불국사에서는 “대웅전과 두 탑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라며 극찬했고, 참배를 마친 뒤 주지 종천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스님들은 마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다스리느냐”,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도를 닦는 게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 등 불교 수행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은정 APEC 준비기획단 대외협력과장은 “총재가 직접 향을 피우고 대웅전 불상들을 유심히 살피며 유교·불교·신라 철학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경주민속공예촌에서도 감탄은 이어졌다. 도예 명장에게 토기 제작 과정을 들은 그는 물레판 위에서 점토가 빚어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며 “오랜 세월 이렇게 정교한 기술을 이어온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한 ‘K-Tech 산업관’에서는 이차전지·조선·화장품·웹툰 전시를 관람하며 “역시 기술력의 나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주 시내 곳곳에서 일반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첨성대와 대릉원을 잇는 골목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인기를 반영하듯 저승사자 차림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심 한가운데 고대 왕릉이 자리 잡은 경주의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풍경에 관광객들은 감탄했다. 태국 대표단 차이방 씨(34)는 “신라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아시아의 로마, 아테네 같다”고 말했다. 미국인 관광객 도너번 씨(42)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다”고 했다. 인근 천마총은 APEC을 맞아 다음 달 16일까지 무료로 개방됐다.
경주의 현대 거리도 외국인들로 붐볐다. 과거 주택가였던 황남동 ‘황리단길’은 카페·공예품점·한복 대여점으로 변신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십원빵과 황남빵을 든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었고, 스페인인 로사 씨(28)는 “몇 걸음만 가면 고대 유물이 있는 도시라니 놀랍다”며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APEC 기간 내외국인을 위해 불국사·석굴암·대릉원·양동마을·옥산서원 등 11개 코스로 구성된 ‘블레저(비즈니스+레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석굴암을 찾은 러시아인 마리아 씨는 “8세기에 이렇게 정교한 석조 건축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유럽의 유명 문화유적 못지않았다”고 말했다.
● APEC 굿즈 ‘품절’…김혜경 여사 불국사 문화행사
기념품 가게에도 관광객들이 몰렸다. 31일 경주역 APEC 기념 굿즈 팝업스토어에는 오전인데도 조선 왕실 문양을 본뜬 와인 스토퍼 등 일부 상품에 ‘품절’ 표시가 붙어 있었다. 직원은 “신라 문양 머그컵과 금박 엽서 세트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캐나다인 관광객은 “딸이 케데헌 팬이라기념품을 사려 왔는데 품질도 훌륭해서 나도 사려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불국사에서는 김혜경 여사가 주재한 APEC 정상 배우자 초청 문화 행사가 열렸다.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의 부인 다이애나 폭스 카니 여사와 뉴질랜드·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 5개국 배우자, 대만 린원쉬엔 영애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한복에 대해 “너무도 아름다운 의복”이라고 감탄했다. 김 여사는 “복주머니의 금빛 글자 ‘福’은 행복과 행운을 상징한다”며 이들에게 핫팩을 넣은 복주머니를 선물했다. 김 여사는 “불국사의 석단을 밟는 발걸음마다 동서와 과거·현재를 잇는 다리가 놓였다”며 “이 만남이 인류가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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