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일, 직장인 이수지 씨(여)는 평소처럼 사무실로 출근했다. 수지 씨의 회사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BYC 빌딩 6층에 있다. 오후 4시 35분, ‘찌르릉-!’하는 작은 경보음을 시작으로 건물은 아수라장이 됐다.
“팀장님 진짜 불이 난 것 같아요!” 수지 씨의 직장 동료가 말했다. 복도에는 하얀색 연기가 스멀스멀 퍼졌다. 수지 씨는 직원들과 옥상으로 대피하기 위해 건물 한가운데 있는 계단으로 뛰었다.
계단은 이미 회색과 검은색 연기로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은 점점 칼칼해졌다. 얼굴과 몸은 검은색 그을음으로 까맣게 변해갔다.
뉴시스 아래층에서는 미처 옥상으로 대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창문 밖으로는 종이쪽지를 날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수지 씨는 비교적 빠르게 옥상으로 대피했지만, 아직 건물을 벗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여성,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아이, 급하게 나와 슬리퍼 차림에 옷매무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 오늘 많이 늦을 수 있으니깐 아빠랑 있어…. ” 수지 씨는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엄마가 오늘 집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더라” 며 끔찍했던 그날을 회상했다. 건물 안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던 그때, 그들의 눈앞에 소방관들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구세주’였다.
“제 눈에만 보였겠지만, 소방관들 머리 뒤에 동그란 후광이 있더라고요.”수지 씨는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시스
창문 밖으로 A4용지에 글 써 던지며 구조 요청
같은 날 사건 직전 분당소방서 재난 대응과 김현중 구조팀장은 퇴근을 앞두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화재를 알리는 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몇 분 사이 화재 신고는 약 1400건이 들어왔다.
화재 현장은 소방서에서 대략 4km 떨어진 곳이었다. 멀리서도 하늘에 새카맣고 커다란 구름이 껴있는 것이 보였다. 소방서 직원들은 즉시 긴급출동을 준비했다.
“분명히 인사 사고가 있겠구나!” 김 팀장은 무전기 소리와 지령을 들으며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구조 난항이 예상됐다. 계속되는 무전 소리에 압박감이 커졌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큰 건물 안에 많은 사람이 고립돼 있었다. 김 팀장은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팀원들이 잘 해줄 것인가!”
지하 1층에는 어린아이들을 강습하는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었다. 이미 지상 쪽에는 연기가 꽉 찼고,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고립된 상황이었다. 1층에서 불이나 2층에 있던 뷔페식당에는 가장 빠르게 연기가 찼다.
계단에 연기가 가득 차서 옥상으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5층과 6층의 제일 끝 쪽 부분으로 피해 있었다. 창문 밖으로 A4용지에 구조 요청을 쓰거나 뭔가를 던지는 사람들도 보였다.
김 팀장은 혹시라도 손을 흔들던 요구조자들이 돌발행동을 할까 봐 걱정했다. “소방관들이 바쁘니깐 본인들을 못 볼 것으로 생각하는데 소방관들도 다 육안으로 보고 있어요.”
대원들은 무거운 방화복과 소방 장비들을 매고 열기가 있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치 앞이 안보이는 연기 속을 헤치고 나갔다. 공기 호흡기 마스크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도 가빠졌다. “저희도 사람이라 안 보이고 뜨거운 데 들어가면 겁이 나지만, 그런 거 다 이겨내고 하는 거죠.”
8층 계단 오르락 내리락…1시간 동안 2만보
뉴스1 대원들은 엘리베이터도 없이 계단으로만 8층 건물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을 구조했다. 소방대원들은 이날 1시간 남짓한 구조 작업을 하면서 2만 보 가까이 걸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팀장은 “지시를 하는 사람이나 그걸 이행하는 사람이나 기본적으로 책임감도 있고, 서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며 “무사히 다 나오기만을 바랐다” 고 말했다.
“어떻게든 빨리. 1명의 피해도 없길…”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구조 작업에 임한 끝에, 옥상에 남아있던 마지막 사람까지 총 347명이 무사히 대피했다. 그제야 김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다 젖었어요. 추운지도 모르고 뛰어다니다가 나중에 한기가 오더라고요.”
김 팀장은 현장을 마무리할 때쯤 몸이 다 젖고 새카맣게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소방관 눈앞에 나타나자 구조 기다리던 사람들 눈물
분당 BYC 빌딩 화재 요구조자들이 분당소방서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분당소방서 제공)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늦게 11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집에 와서 휴대전화를 확인했을 때 부재중 전화가 많이 찍혀있었다. 김 팀장의 동생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우리 직원 30명이 거기 있었어.” 화재가 난 건물 6층에는 김 팀장 동생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있었다. 김 팀장은 이 사실을 몰랐다. 다른 곳에 있다가 회사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이 형에게 애타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 회사에는 직원 30여 명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바로 수지 씨였다. “진짜 죽을 것 같았어요. 연기도 많고 어둡고….”
분당소방서 재난대응과 김현중 구조팀장 (사진=분당소방서 제공) “신이 내려오는 느낌이라고 할 때 너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수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방관이 구하러 왔을 때 직원 중 몇 명은 살았다는 안도에 눈물을 흘렸다.
수지 씨는 직원들을 대표해 소방서에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자신이 손수 만든 꽃다발과 먹거리도 가지고 갔다.
김 팀장은 화재 규모는 컸지만 인명 피해 없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들과 건물 관계자, 소방대원들 모두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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