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진학 성적 낸 IBDP 독해법 “IBDP 진학 성적 뒤에 가려진 교육적 가치 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8일 1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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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사대부고, 대구외고, 포산고의 진학 성과 기대 이상
학생 성장 본 교사의 열정과 헌신이 바탕
과감한 IBDP 도입과 철저한 준비 덕분
탐구 역량으로 대학 문 뚫어
고교에서도 논·서술식 절대평가 통한다는 걸 증명
IB 확대 위해 교사들 의견 귀 기울여야

지난해 11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우측에서 3번째)이 경북사대부고를 방문해 IB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해 11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우측에서 3번째)이 경북사대부고를 방문해 IB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북사대부고, 대구외고, 포산고 등 대구광역시 소재 3개 고교에서 IBDP(국제바칼로레아 고교과정)를 이수한 66명이 2024학번 대학생이 됐다. 한국어로 IBDP를 이수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간 건 이들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표선고 105명이 처음이다. IB는 자기탐구를 바탕으로 학생의 내적 성장이 목표인 교육프로그램이다. 평가에서는 논·서술식 절대평가를 채택하고 있다. IB는 귀족교육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세계 각국의 공립고교에서 공교육 강화를 위해 도입 중이다. 초등(PYP)-중등(MYP)-고등(DP) 과정과 직업계 과정(CP)이 있다. 국내에는 아직 CP는 들어오지 않았다.

2019년부터 대구와 제주에서 시작한 IB 프로그램이 진학 부문에서 합격점을 받은 건 IB 확산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 3개 고교와 제주 표선고의 진학 성과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만족시킬 정도로 좋았다. 171명의 IBDP 이수자는 국내에서는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대학, 과학기술원, 거점국립대 등에 골고루 진학했다. 또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의 유수 대학에 들어갔다.

○대구와 제주의 IB는 정교한 전략의 산물
대구와 제주의 IBDP는 정교한 전략의 산물이다.

2018년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의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IB는 강 교육감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대구에 급속도로 전파됐다. 새로운 교수 학습법을 찾는 대구의 교사 문화도 IB의 빠른 확산에 이바지했다. 최근 IB를 도입하고 있는 대다수 교육청이 IBDP 관심 학교(IB는 관심-후보-인증 단계를 거친다.) 선정에 애를 먹고 있지만, 대구는 도입 초기 과감히 3개 고교에 DP를 도입했다.

대구의 IBDP는 일반고, 외고, 농산어촌 학교 등 성격이 다른 학교에서 희망자에게만 실시한 것이 제주와 달랐다. 제주는 오지 학교인 표선고에서 교육을 통해 지역 회생을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고 전 학년이 대상이었다. 강 교육감은 각기 다른 학교에서 IBDP를 실시한 이유를 “평균 수준의 일반고에서 안착하면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고(경북사대부고), 외국어에 치우쳐 부족한 학문적 융합 소양 길러주며(대구외고), 지역 경쟁력 제고(포산고)를 위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진학 전략에도 많은 대비를 했다.

2018년 IBDP 도입 전부터 교사 16명과 전직 대학 입학사정관 3명으로 구성된 ‘아이비-대학 연계 현장 지원단’을 발족시킨 것. 지원단을 이끌었던 도규태 경북사대부고 교사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동료 교사들과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방법을 많이 연구했다”고 했다. 3개 고교의 뛰어난 진학 성적에는 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연구와 탐구 역량으로 대학 문을 뚫어
한국 고교에서 연구와 탐구를 통해 쌓은 역량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생뚱맞게 들린다. 수능 성적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일부 수시 전형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가려면 별도로 수능 성적도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IBDP에서는 문제풀이식 공부를 하지 않고, 졸업시험 기간이 수능시험과 겹치기에 IBDP 이수자들이 수능에 응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의 대학들은 IBDP 점수를 수능 점수로 환산해 정시에 반영하는 기준이 없기에 IBDP 점수로 정시에 지원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IBDP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적힌 역량을 평가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대학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DP 첫 이수자들이 거둔 진학 성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모두에는 IBDP에 참여했던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청 관계자들과 IBDP가 고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교육관계자들과 시민을 망라한다.

○진학 결과보다는 학생 변화 봐야
4개 고교의 IBDP 결과는 진학 측면에서만 조명돼서는 안 된다.

진학에 무게가 쏠릴 때 자칫하면 ‘IB를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라는 인식만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IBDP를 준비하고 첫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경북사대부고 교장으로 있었던 박재선 대구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IB의 교육적 가치가 진학을 훨씬 뛰어넘기에 진학 결과만 보고 IB를 평가하는 건 IB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IB가 어떻게 학생, 학부모, 교사를 변화시켰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북사대부고에서 IBDP를 이수하고 UNIST(울산과학기술원)에 진학한 양세미 씨는 “IB의 학문적 경험을 통해 몸에 밴 좌절과 극복, 도전, 인생의 균형 등 삶의 태도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기둥 역할을 할 것 같다”고 했다. 예영주(경북사대부고 졸. 한양대 응용물리학과 입학) 씨는 IB를 “‘그래서 이걸 왜 하는 건데?’라는 의문이 들지 않게 하는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예 씨는 “모든 과목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개념을 익혔다. 그 덕에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여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얻었다. 이 능력이 장래에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IBDP를 경험한 많은 학생의 소감은 두 학생과 대동소이하다. 한국의 일반고교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경북사대부고 IB반 학생들이 조슈아 코템 원어민 교사(가운데)와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이 수업을 기획한 장밝은 교사는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가능성을 확인한 이상 계속 비슷한 수업을 할 것”이라면서 “예전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경북사대부고 제공
경북사대부고 IB반 학생들이 조슈아 코템 원어민 교사(가운데)와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이 수업을 기획한 장밝은 교사는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가능성을 확인한 이상 계속 비슷한 수업을 할 것”이라면서 “예전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경북사대부고 제공


○학생을 믿고 ‘정의란 무엇인가’ 원전을 영어 교재로 쓰기도
경북사대부고 장밝은 교사(영어)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어 원전을 수업 교재로 쓴 것은 한국 고교에서도 탐구와 토론이 주가 되는 교육이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다.

장 교사는 2022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2023년 1학기까지 영어 하이레벨 수강자 8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글로도 읽기 어려운 책을 영어 교재로 선택한 이유는 “IB를 통해 모든 교과에서 아이들이 의미를 깨우치면 성장하는 걸 봤기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장 교사는 “아이들은 내용에 빠져들었고 자신과 사회, 세계 문제를 논할 때 상당한 수준의 윤리 개념들을 거론했다”면서 “어려운 내용을 소화한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장 교사는 수업을 통해 “언어 능력, 생각이 다른 사람과 예의를 갖춰 토론하는 능력, 상대방의 생각이 옳으면 내 생각을 버릴 줄 알고 상대방이 틀려도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 교사가 말한 학생의 성장은 연결된 IBDP의 모든 교과과정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을 관찰해 수업에 반영한 교사들 덕분이다. 이원두 교사(경북사대부고)는 “교과마다 8~10개의 필수 실험을 통해 교사와 학생 간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고 교사들은 학생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반영한다”고 했다.

○논·서술식 절대평가가 고교에서 통한 것의 의미
고교에서 절대평가가 먹힌 건 수능에서도 절대평가가 가능하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한국에서 경쟁교육과 줄 세우기 교육이 없어지지 않는 건 내신과 국가시험인 수능 모두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의 사회적 신뢰 자본의 부족이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IB는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신뢰를 교사의 노력에 바탕을 둔 정교한 시스템으로 확립했다. 학생, 학부모가 평가 결과에 동의하는 건 교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평가 결과는 IBO(IB 본부)도 매우 존중하기 때문에 교사의 내부 평가를 최종 점수에 반드시 반영한다. IBO는 교사들의 평가 능력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자 사이의 교차 검증을 통한 조정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평가의 질’ 관리를 하고 있다. 교사들은 평가 능력을 기르는 연수에 수시로 참여하고 IBO의 수시 점검을 받기도 한다.

2019년 11월 당시 IBO 총재인 쿠마리 박사(우측)가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중앙),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과 함께 경북사대부중을 방문해 IB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혜정 소장은 2017년 ‘대한민국의 시험’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진학 위주 교육을 개선하려면 교육과정과 평가가 일치하는 IB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의 주장은 한국의 IB 도입에 마중물이 됐다. 대구시 교육청 제공


○IBDP 확대하기 위해 교사 의견 존중 필요
대구와 제주의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IB의 성공을 위해 나섰던 것은 ‘제자들의 변화’ 때문이었다. IB 학교에서는 친구가 경쟁 상대가 아닌 나를 이끌어 주는 동반자였고 이 과정에서 학교 폭력은 없어지고 교권은 저절로 강화됐다. 사교육 의존도도 현저히 줄었다. 공부량이 많고 탐구가 중심인 IB에 사교육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도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내적 성장을 거듭해 가는 자녀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여유가 생겼다.

한국의 17개 교육청 대부분이 IB 도입에 나서는 건 IB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의 확산과 K-에듀를 위한 마중물로 삼기 위해서다. IB가 어려움을 딛고 한국 교육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 덕분이다.

IB 확대에는 교사들의 의견이 중시돼야 한다. 경북사대부고 교사들은 IB 확대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인력 충원, 대학의 IB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규모 고교를 중심으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DP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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