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이란 히잡 혁명의 불꽃 ‘마흐사 아미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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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Hijab)은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전통 복장입니다. 아랍어 ‘가리다’에서 유래했듯 대체로 스카프처럼 감아 머리카락과 목, 가슴을 감쌉니다. 지역과 민족에 따라 몸을 더 많이 가리는 니깝, 차도르, 부르카 등도 있습니다. 히잡 자체는 성차별도 억압도 아닙니다. 문제는 강요된 전통에 있습니다.

2022년 9월 13일, 가족과 함께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가던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사진)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실려 나옵니다. 그녀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발표되었으나, 여러 목격자에 의해 그녀가 구타당했으며 경찰차에 치였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민중의 분노는 폭발했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란에서 히잡은 단순히 전통이나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세속이슬람주의를 표방했던 이전 팔레비 왕조는 여성들의 투표권을 허용하고 복장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히잡 착용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친미 독재와 부패, 극심한 빈부격차로 민심을 잃었고, 이란 민중은 호메이니라는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왕정 독재에 저항해 이슬람 혁명(1979년)을 일구어냅니다. 당시 이란 여성들은 오히려 히잡을 두르고 시위에 나서면서 팔레비 왕조에 저항했습니다.

이후 이란은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히잡을 차별과 억압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1983년 호메이니는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는 히잡을 쓰도록 강제했습니다. 일부 여성들이 저항했지만 부질없었습니다. 급기야 202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슬람 신학자 출신의 에브라힘 라이시는 여성 탄압을 강화하는 ‘히잡과 순결 칙령’(2022년)을 반포합니다.

이란은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라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2018년 미국에 의해 석유 수출과 금융 거래까지 막히면서 경제가 파탄 난 상황이었습니다. 2012년 9000달러에 육박하던 1인당 GDP는 2020년 3000달러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인플레이션은 40%에 육박하고, 높은 실업률로 민심은 흉흉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미니의 억울한 죽음은 이란 정부를 향한 민중의 분노에 불을 댕긴 셈입니다.

지난 1년간 이란에서는 2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최소 7명 이상이 사형당했습니다. 미성년자 71명을 포함해 537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탄압에도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는 이란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지역과 계층을 불문한 시위에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까지 동참했습니다.

“저도 딸이 있습니다. 제 딸도 아미니처럼 될 수 있어요!” 한 어머니의 절규는 얼마 전 1주기를 맞은 아미니의 죽음이 ‘히잡 혁명’의 불꽃이 되어 이란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게 된 이유를 말해줍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마흐사 아미니#히잡#이란#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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