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동의 없이 촬영” 비닐로 CCTV 가린 직원들…대법 “정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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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7월 17일 1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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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 뉴스1
대법원 전경 ⓒ 뉴스1
회사가 근로자의 동의 없이 작업장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을 강행하자, 근로자들이 카메라에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을 막은 것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 등 3명에게 각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타타대우상용차 소속 직원인 정씨 등은 회사가 시설물 보안과 화재 감시 목적으로 군산 공장에 설치한 CCTV 카메라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워 수일간 촬영하지 못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8년 11월12일과 같은 해 12월18일에는 51대의 카메라에 비닐봉지를 씌워 각 5일씩 촬영하지 못하도록 했고, 2015년 12월 28일에는 카메라 중 12대를 9일 동안 가렸고, 2016년 1월4일에는 14대를 가려 22일 동안 촬영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전국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자지회 노동조합 지회장, 조직부장, 노조 후생부장으로, 사측이 사업장에 CCTV를 설치하면서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자 카메라를 가린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1심은 “피고인들이 CCTV를 비닐봉지로 가린 행위는 업무방해죄에서의 위력의 행사에 해당한다”며 정씨 등에게 각 7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도 “회사가 CCTV를 설치하면서 동의나 협의를 거치지 않아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는 면이 있다고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설치 목적에 시설물 보안, 화재 감시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보면,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데까지 이르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고, 시설물 관리 업무를 방해할 위험성도 인정된다”며 정씨 등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정씨 등이 카메라를 가린 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CCTV가 작동되지 않거나 시험가동 중이었던 2018년 11월12일 및 12월18일에는 근로자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지 않았으므로, 정씨 등이 이 기간 동안 카메라를 가린 것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정식가동이 시작된 이후인 2015년 12월28일 및 2016년 1월4일 카메라를 가린 것은 정당행위의 요건을 갖췄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CCTV를 가린 것은 위법한 CCTV 설치에 따른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피해자의 시설물 보호를 방해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은 CCTV 카메라 자체를 떼어내거나 훼손하지 않고, 검정 비닐봉지를 씌워 임시적으로 촬영을 방해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런 임시조치를 통해 부당한 침해에 대응하는 한편, 회사와 협의를 계속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정씨 등은 CCTV가 정식가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근로자들의 작업 모습이 찍히는 카메라 12대만 골라 비닐봉지를 씌웠다”면서 “이후 회사에 작업 현장을 찍는 16대는 야간에만 작동시키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회사가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 제안을 거부하자 다시 14대의 카메라에만 비닐봉지를 씌웠다”며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보호 이익과 침해이익 사이의 법익 균형성도 갖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근로자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CTV의 정식가동을 강행해 근로 행위나 출퇴근 장면 등 개인 정보가 위법하게 수집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었다”며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일단 침해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이를 전보하거나 원상회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이 다른 구제수단을 강구하기 전에 임시조치로 검정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을 막은 것은 긴급성과 보충성의 요건도 갖추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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