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보이지 않았던 김포골드라인 대책…수륙양용버스 철회 과정 진단[메트로 돋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0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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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충남 부여군에서 ‘부여 수륙양용 시티투어 버스’가 백마강으로 진입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수륙양용버스로 관광용으로 운행한다. 부여=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번 한 주 수도권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습니다. ‘골병라인’으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김포도시철도)의 혼잡도 문제입니다. 이달 11일 김포골드라인에서 10대 여학생과 30대 여성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는 등 올해에 발생한 안전사고만 벌써 18건.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 정부까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어진 땜질식 대책 발표가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수륙양용버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김포시가 혼잡도 완화 대책으로 서울시에 먼저 제안했다는 수륙양용버스는, 도입 검토 발표 4일 만에 사실상 교통수단으로서 ‘사망 판정’을 받고 철회됐습니다. 대신 서울시는 더 많은 인원을 빠르게 수송하는 수상버스를 운영하겠다고 선회했습니다.

다소 뜬구름 잡는 듯했고, 실효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이 대책은 과연 어떻게 제안됐고, 어떻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건지 세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 김포 대중교통 대책이 수륙양용버스?


수륙양용버스 논란은 14일 시작됩니다. 이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포도시철도 혼잡 문제와 관련해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개화∼김포공항 구간 중 서울시 관할 구간이 버스전용차로로 지정돼있지 않다”며 “출퇴근 시간에 많은 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전용차로가 없어) 차량 정체가 일어나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즉각 전용차로 지정을 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습니다.

원 장관은 또 “지자체들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 보니 해결이 안 되고 갈등만 생긴다”며 “서울만 울타리를 쳐서 편의를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면 수도권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서울시를 정면으로 겨냥했습니다.

14일 서울시가 발표한 보도자료. 김포골드라인 혼잡도 완화 특별 대책 중 하나로 ‘수륙양용버스’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자료: 서울시
14일 서울시가 발표한 보도자료. 김포골드라인 혼잡도 완화 특별 대책 중 하나로 ‘수륙양용버스’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자료: 서울시

서울시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적극 반박에 나섰습니다. 2021년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김포시와의 협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작년에 도입한 1, 2단계 버스전용차로 효과를 지켜본 다음 3단계(개화역~김포공항) 차로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후 김포시의 요청이 없었다는 취지였습니다.

두 시간 후 서울시는 버스전용차로 설치를 포함한 특별대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합니다. 수륙양용버스는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서울시는 “김병수 김포시장이 제안한 새로운 교통수단인 수륙양용버스 도입도 김포골드라인 혼잡도 완화 대책의 일환으로 적극 검토 중”이라며 “김포 아라뱃길과 서울항을 연계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김포시 제안에 서울시가 전격 발표


김포시에 따르면 서울시에 ‘수륙양용버스’를 처음 제안한 건 이달 초 무렵입니다. 김포시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울시에서 계속 ‘그레이트 한강’이라든지 이런 걸 발표했잖아요. 이전에 수상 택시라든지 이런 부분이 다른 교통하고의 연계가 부족해 실패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선착장에 내려서 걸어가거나 개인 모빌리티(PM)을 타는 대신 수륙양용이면 바로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 수 있지 않겠냐 해서 (시장이) 생각하게 된 거죠. 김포골드라인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미약하지만 이거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협의한 거죠.” (김포시 관계자)

수륙양용버스는 김포시가 원래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던 사업도 아니었습니다. 김포시의 한 관계자는 “이전부터 김포시가 도입을 추진하던 사업은 아니다. 투자 차원에서 검토한 게 아니다 보니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며 “시장님이 즉흥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시장이 만나는 자리에서 김포시장의 제안으로 진행이 됐다는 취지입니다.

수륙양용버스는 2주 후 서울시가 적극 검토하는 사업으로 ‘격상’됐습니다. 하지만 시민과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서울시와 김포시가 실효성도 없는 ‘땜질식’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이 납득할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보궐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김포 시민이 들으면 화낼 이야기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계획”이라고 꼬집었습니다.

● ‘시민’은 없었던 특별대책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18일 “김포시가 제안한 수륙양용버스 도입을 검토해본 결과 출퇴근 등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백지화했습니다. 이달 초 제안받아 2주 만에 발표한 대책이 4일 만에 다시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진 겁니다. 그 대신 서울시가 ‘그레이트 한강’ 사업으로 추진 중인 수상버스(리버버스)를 행주대교 남단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수륙양용버스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업을 제안한 김포시는 여전히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김포시 관계자는 “서울시와 안정성이나 속도, 사업성 등을 검토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연구용역조차 진행되지 않았고, 비용이 너무 비싼데다 속도까지 느리다는 지적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지자체는 시민들의 불편과 피해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저출산·양육 지원 대책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시는 최근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확대, 고령 산모 검사비 지원 등 차별화된 정책을 발 빠르게 내놓으며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서울시를 생각해 수륙양용버스를 제안했다는 김포시도, 이를 성급히 받아들였던 서울시도 ‘시민’의 처지를 가슴 깊이 고민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도 시민들은 콩나물시루에 갇혀 김포와 서울을 오가고 있습니다. 두 지자체와 정부가 시민들의 입장에서 근본적 처방을 내놓길 바랍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리버버스를 탑승하고 있다. 이날 오 시장은 “우리도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수상버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한강 잠실~상암 구간에 수상버스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제공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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