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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태국發 마약 택배’ 찾아 전국 뒤진 경찰…“불법체류자 관리, 마약 예방 지름길”[사건 Zoom In]

입력 2022-10-02 14:34업데이트 2022-10-1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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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체류 태국인 마약 조직 검거한
동작서 강력팀 박성원 경감 인터뷰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마약거래 장면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선 홍어 무역선에 코카인을 숨겨 한국으로 보내는 내용이 나옵니다. 해외로 보내는 물건 속에 마약을 숨겨 유통하는 장면은마약 범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동작경찰서는 태국에서 밀반입한 마약을 전국에 유통한 외국인 마약 조직 43명(구속 24명)을 검거했습니다.

국내에 체류하던 태국인 총책 A 씨는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160억 원 상당의 필로폰 2.5kg을 밀반입했습니다. 총 8만3000여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입니다. 이중 1.37kg이 국내에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유통됐습니다.

수사를 주도한 박성원 경감(46)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초 경위에서 경감으로 1계급 특진했습니다. 지난달 22일 박 경감을 동작경찰서에서 만나 불법체류자 간 마약 유통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불법체류자 간 60억 규모 마약 시장 형성”
‘태국에서 항공택배로 들어온 마약이 노량진까지 흘러 들었다’

수사는 첩보 한 줄에서 시작됐습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는 마약 유통이 흔한 곳은 아닙니다. 동작경찰서 관내에서 단순 투약자가 검거되는 일은 가끔 있었지만, 조직적 유통이 이뤄지고 있단 정보는 12년차 형사에게도 낯선 이야기였습니다. 박 경감은 “항공택배로 들어온 물품을 태국인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한 끝에 검거한 필로폰 판매자의 입에선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필로폰을 태국인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판매하는 ‘소매상’일 뿐이고 더 큰 규모로 필로폰을 유통하는 ‘공급책’이 있다는 겁니다.

서울 판매책에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수사를 이어가니, 조직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판매책들은 서울, 인천, 경기, 강원, 경남, 전남 등 전국 곳곳에 퍼져 있었습니다.

필로폰 구매자들은 전국 곳곳의 공장이나 농촌 등에서 일하는 태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밤샘 근무 등 고된 노동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필로폰 투약으로 해소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불법 체류자였고, 태국에서 이미 마약 투약 경험이 있는 이들도 상당수였습니다.

국내 체류 중인 태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60억 원 상당의 마약이 유통됐던 셈입니다. 박 경감은 “수사 과정에서 통역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최근 수년간 태국인 불법체류자가 대폭 늘었다고 하더라”며 “내국인 유통 없이 외국인들 사이에서만 필로폰 60억 원 어치를 유통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 신발 밑창 뜯어 필로폰 숨겨…태국發 ‘마약 택배’
박 경감으로부터 태국에서 흘러 들어오는 ‘마약 택배’의 형태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약 택배’는 당연하게도 과자나 화장품 등 정상적인 물품 택배를 가장해 배송됩니다. 물품 속 빈 공간에 필로폰을 숨겨 택배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박 경감은 “신발 밑창을 뜯어 필로폰을 넣어 보낸 사례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약 택배’를 발견하면 발송지와 배송지를 추적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박 경감의 설명입니다. 택배 발송지엔 대부분 실제 발송지 주소가 아닌 중간 배송대행지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마약 택배’를 만들어 보내는 태국의 공급책들은 발송 주소를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여러 배송대행지를 거치는 방법으로 ‘세탁’을 합니다. 택배 물품만 가지고는 발송지를 추적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은 셈입니다.

택배가 도착하는 배송지 주소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으로 돼 있습니다. 상당수가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택배를 받을 일정한 주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향에서 필요한 물품을 전달받을 땐, 대다수가 자신이 일하는 공장 주소로 택배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태국인 마약 유통 조직은 이 점을 노렸습니다. 공장으로 오는 수많은 택배 가운데 일부에 마약을 숨기고, 해당 공장에 일하는 노동자에게 아르바이트비를 지급하고 물품 전달을 지시하는 방법으로 유통 경로를 숨깁니다. 박 경감은 “물건을 옮긴 사람들 중엔 내용물이 마약인 줄도 모르는 이들도 다수였다”고 했습니다.

마약 판매책들 중엔 마약 구매 비용을 벌기 위해 유통에 가담한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1회 투약분(0.03g) 2만~3만 원에 거래되는 필로폰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받은 임금만으로 구매해 사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박 경감이 검거한 태국인 마약 판매책 중 상당수는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며 부업으로 마약 유통을 하거나, 노동자로 일하다 판매책으로 전향한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태국인 마약 조직 판매책이 쌀통 속에 숨겨둔 필로폰을 동작경찰서 강력팀 형사가 찾아내는 모습. 박성원 경감 제공.
● 라인과 페이스북 통해 연락…본명 확인부터 난항
피의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일도 내국인에 비해 훨씬 어려웠습니다. 태국인 마약 유통 조직원 대부분은 불법 체류자였습니다. 이들은 라인(LINE)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서로를 태국어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판매책들끼리도 서로의 본명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메신저의 음성통화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주고받은 경우, 통화 녹취를 확보할 수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범행에 사용한 휴대전화는 대부분 타인 명의로 개통된 '대포폰'이었습니다.

마약 사범을 현장에서 검거하려면 체포영장이 필수적입니다. 어설프게 영장 없이 ‘참고인 조사’ 형태로 피의자를 불렀다간 달아나기 십상입니다. 외국인 마약 사범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으려면 본명과 외국인 등록번호 등 기본적인 개인 정보는 알아야 하는데, 이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던 겁니다.

여기에 마약 거래에 참여했다는 증거까지 필요하니, 박 경감이 지난해 관련 수사를 시작한 뒤로 집에 가서 편히 쉰 날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박 경감은 “현장을 덮쳐 마약 거래, 사용 흔적을 확인해도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얼버무리는 이들이 대다수였다”며 “외국어 통역 어플리케이션을 써가며 판매책과 대화 내용 및 범죄 증거를 들이대면 그제서야 혐의를 인정했다”고 했습니다.

지방의 한 오피스텔에서 판매책을 검거할 땐 피의자들이 문을 열지 않아 1시간동안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습니다. 형사들이 도착하자 이상한 낌새를 챈 이들은 집안에서 인기척을 숨기고 대치했습니다. 소방과 협조해 철문을 뜯고 들어가자 태국인 남녀 2명이서 태연히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필로폰은 물론 마약 사용 흔적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장시간 수색 끝에 쌀통에 숨긴 필로폰을 찾아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박 경감은 “판매책들이 살던 집이 건물 5층에 있었는데, 혹시라도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등 돌발 행동을 할까봐 걱정했다”며 “마약 사범들은 국내 형사 처벌 형량이 높다는 걸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도주하려 하기 때문에 신속한 현장 검거가 중요하다”고 했다.

박 경감(오른쪽)이 지난달 7일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특별승진 임용식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으로부터 계급장을 받고 있다. 잠복, 위장 수사가 많은 마약 사범 검거 엄무 특성상 박 경감의 얼굴은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청 제공.


●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 숙소서 마약 사용 흔적”
외국인 마약 사범을 찾아 전국 각지를 누빈 박 경감은 불법 체류자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이 마약 범죄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박 경감은 “마약에 손을 댄 태국인 노동자 상당수는 공장에 딸린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살고 있었다"며 "숙소 침대 밑이나 장롱 등에서 필로폰 투약에 사용한 주사기나 흡입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 경감은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가 평소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을 살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마약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박 경감은 “외국인 입국 시 심사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검거된 마약 사범 중 상당수는 관광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그대로 체류한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에는 태국에서 이미 마약에 손을 댔던 이들도 많았습니다. 박 경감은 “한번 국내에 들어온 불법체류자는 범죄에 연루돼도 추적해 검거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입국 단계에서부터 마약 범죄에 연루된 이력이나 마약 사용 이력을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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