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울진마을 폭격 맞은듯 매캐한 연기만…집은 폭삭 농기구 고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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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3월 10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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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산불 피해를 입은 울진 북면 소곡1리에서 전소, 파손된 자동차가 방치돼 있다.2022.3.10/뉴스1 © News1 조현기 기자
10일 산불 피해를 입은 울진 북면 소곡1리에서 전소, 파손된 자동차가 방치돼 있다.2022.3.10/뉴스1 © News1 조현기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 이장 이진모씨가 불에 탄 집을 둘러보고 있다.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 이장 이진모씨가 불에 탄 집을 둘러보고 있다.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 모습. 12가구 중 11가구의 주택이 산불로 피해를 봤다.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 모습. 12가구 중 11가구의 주택이 산불로 피해를 봤다.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울진 북면 소곡1리의 한 주택이 산불에 무너진 모습. 2022.3.10/뉴스1 © News1 조현기 기자
울진 북면 소곡1리의 한 주택이 산불에 무너진 모습. 2022.3.10/뉴스1 © News1 조현기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의 마을이 산불에 무너진 모습.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울진 죽변면 화성2리의 마을이 산불에 무너진 모습. 2022.3.10/뉴스1 © News1 박기호 기자
8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소광리 일대에 펼쳐진 금강송 군락지에 불길이 번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2.3.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8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소광리 일대에 펼쳐진 금강송 군락지에 불길이 번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2.3.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우리 마을에서 한 채 빼고 모든 집이 폭삭 무너져버렸어. 앞으로 지낼 곳도 문제고 다들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지.” (울진군 죽변면 화성2리 주민 남옥랑씨)

“살면서 이런 산불은 처음 봤어. 이틀 동안 밤새 집 주변 불을 끄느라 팔이 아파. 다행히 경운기만 탔지만 주변만 보면 마음이 울적하고 뒤숭숭해.”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주민 권재진씨)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화재의 흔적은 처참했다. 10일 울진 피해 현장 곳곳을 둘러보니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온전한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울창한 산림을 자랑했던 산은 모두 까맣게 타버리고 곳곳에 있던 민가는 폭삭 무너져 마을은 스산한 분위기와 적막감만 감돌았다. 매캐한 냄새도 코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울진 화재로 막대한 피해를 본 죽변면 화성2리. 주민 25명가량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마을에 있는 12가구 중 11곳이 타버려서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지내는 중이다. 마을 이장 이진모씨(76)는 한숨을 쉬며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울진에서 처음 불이 난 후 모두 인근 대피소로 피해있었는데 다음날 새벽에 마을까지 번져서 이렇게 돼 버렸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씨의 부인 남옥랑씨(74·여)는 착잡한 표정으로 “우리 집은 2009년에 새로 지어서 (인근 주민) 모두 (집이) 좋다고들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 집은 침대도 원목으로 된 280만원짜리였다”며 “깎아서 250만원에 샀는데 다 타버렸다”고 울상을 지었다.

마을회관에서 이씨와 함께 차를 타고 흔적만 남은 집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며 살펴본 주변 모습은 말문을 막히게 했다. 마을은 물론 산과 들은 이미 쑥대밭이었는데 이씨가 자신의 집이라고 가리킨 곳은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이씨 집에는 주인 대신 울진군 직원들이 나와 수도관을 점검 중이었다. 누수가 발생할 수 있어서 계량기를 살펴보러 왔다고 한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집에 불이 붙어 무너진 집 중에 수도관이 터져버린 집들은 홍수가 난 것처럼 누수가 생긴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집은 이씨가 키우던 강아지가 외로이 지키고 있었다. 강아지는 외부인을 경계하듯 마구 짖어대다 산불에 지쳐버렸다는 듯 이내 꼬리를 내리고 누워버렸다.

집 앞에 타버린 채 굴러다니던 식기를 주워든 이씨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여기가 안방이었어요. 그리고 여기는 거실, 저기는 조그만 방.” 폐허로 변한 집을 돌아다니며 이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다.

화성2리 주민들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이번 화재로 집을 비롯한 모든 생활터전이 모두 타버렸다. 이씨는 “기술센터에서 농기계는 다 무료로 빌려준다고 하니 다행”이라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선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화성2리 인근에서 잿더미가 된 밭을 바라보던 노연희씨(89·여)는 “이것은 화재가 아니라 난리”라고 했다. 그는 “아이고 무서워라”라고 중얼거렸다.

산불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한 곳인 북면 소곡1리. 이재민이 다수 발생한 곳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마을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산에 둘러싸인 마을에선 온전한 집을 찾는 게 힘들 정도였다. 집 앞 마당으로 짐작되는 곳에 있던 트럭은 불에 타 고철로 변해있었다. 길을 따라 이동하니 맨 마지막 집은 그나마 화재 피해가 덜해 보였다.

TV를 보다 인기척에 집 밖으로 나온 권재진씨(65)는 “인근 54가구 중에서 39가구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 산기슭에 맞닿아 있는 권씨의 집 주변은 나이먹은 소나무들로 멋진 풍광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불에 타버린 나무들이 처참했던 화재 당시를 짐작하게 했다. 인근 집들보다 그나마 피해를 덜 봤지만 한구석에는 불타버린 경운기가 나뒹굴었고 흰색 털의 강아지는 재를 뒤집어쓴 듯 시커멓게 변했다.

인근 삼척에서 근무 중 급히 돌아와 불을 껐다는 권씨는 집 주변에 널린 화마의 흔적을 보여주며 “내 살면서 이런 산불을 처음”이라고 기막혀했다. 화재 발생 후 이틀 동안 밤새 잠도 못 자고 집을 위협하는 화재와 맞서느라 팔이 아프다고 한 그는 “불이 나기 15일 전에 집 곳곳의 낙엽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는데 (방치하고) 그대로 있었으면 우리 집에도 불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집 밖 모습만 보면 마음이 울적할 뿐이다. 그는 “주변 소나무가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려면 최소 50~60년은 걸릴 것인데 어느 세월에 될지 모르겠다. 집 밖만 보면 울적하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모친과 함께 사는 권씨는 “어머님이 몸이 불편해서 주위에 사시는 분들이 자주 놀러 오시곤 했는데 다들 집이 무너져 대피하러 가셔서 (적적해 하신다)”라며 “이것은 (피해가) 불뿐만이 아니라 이중고, 삼중고”라고 말했다.

권씨 집 주변은 이미 화마의 영향으로 더 불에 탈 것도 없어 보였지만 하늘에는 인근 산불을 진압하기 위한 헬기가 계속 오갔다.

울진 화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 4일 발생해 이날 발생 1주일째인 울진지역 산불 진화율은 75%로 소강상태다. 설령 불을 모두 진화해도 복원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지 짐작조차 어려워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마음이 많이 피폐해요” 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다니던 내내 이재민들과 권씨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울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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