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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단독]“지옥 같았다” 분양합숙소, 가출청소년 꾀어 착취-폭행

입력 2022-01-25 03:00업데이트 2022-01-2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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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합숙소 감금-추락’ 전말
부동산 분양업을 위해 만들어진 합숙소를 탈출한 20대 남성 B씨를 다시 붙잡아와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는 A씨 등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2.01.19. 뉴시스
“진짜 악마 같은 놈들이었어요. 자기보다 약한 애들을 사실상 가둬놓고 세뇌시킨 거죠.”

이달 초 서울의 한 부동산 분양합숙소에서 20대 남성이 도주 중 빌라 7층에서 추락한 사건의 배경에는 취약계층 청년과 가출 청소년 등을 교묘하게 조종한 분양대행팀장 박모 씨(29·구속) 등의 착취와 폭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박 씨 일당은 가상화폐 ‘리딩방’(불법유사 투자자문 행위가 이뤄지는 온라인 대화방)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팀원을 모집한 뒤 미분양 부동산을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 특히 박 씨가 오갈 데 없는 팀원들을 합숙시키면서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거나 대화를 못 하게 하는 등의 수법으로 “팀원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가출 청소년 꼬드겨 분양 일 시켜
지난해 박 씨 일당과 함께 수개월 동안 분양 홍보 일을 했다는 A 씨는 24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옥 같은 2021년이었다”며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A 씨가 박 씨를 접한 건 지난해 1월경 가상화폐 ‘H리딩방’이었다. 박 씨 일당 중 한 명이 이른바 ‘경주마’(급등하는 코인)를 추천하면서 유료 회원 가입을 유도했다. 박 씨는 유료 회원에게 “전망이 좋고 엄청난 호재가 있는 부동산 물건이 있는데 안 사는 사람은 ‘호구’”라며 추천했다. 자신과 함께 분양대행을 할 팀원도 모집했다. 주로 금융채무 불이행자나 고정적 수입이 없는 청년들이 유혹에 넘어갔다. A 씨 역시 박 씨의 말에 따라 계약금도 절반은 대출을 받아 인천 숙박시설 3채를 분양받았다.

A 씨가 박 씨와 함께 일하며 본 업무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박 씨는 은근히 팀원들에게 직접 분양받을 것을 권유했다. 수익성이 좋다고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었다. 지난해 2월 박 씨에게 분양 업무를 맡겼던 한 분양대행 업체는 “요즘 (분양이) 쉽지 않았던 상업시설이었다”고 했다. 박 씨는 자신이 수수료를 건당 50만∼60만 원만 받는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뒤로 수백만 원을 몰래 챙겼다고 A 씨는 주장했다.

박 씨 일당은 지난해 5월 가상화폐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팀원 모집이 어려워지자 가출 청소년으로 눈을 돌렸다. ‘숙식을 제공하겠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출 청소년이나 오갈 데 없는 청년들을 꼬드긴 뒤 전단이나 전화 돌리는 일을 시켰다.

A 씨는 “(박 씨가) 가출 청소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수수료를 다 가지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숙박하는 팀원은 박 씨가 키우는 강아지 배변, 어항 치우기, 빨래, 청소 등 잡일도 다 했다”고 전했다. 집 안에서는 도난을 방지한다며 반려견용 CCTV로 직원들을 감시했다.
○ “꼭두각시처럼 조종”
합숙을 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밤 12시까지 붙잡고 평일과 주말,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게 했다. A 씨는 “(팀원들이) 서로 이야기를 못 하게끔 떨어뜨렸다. 꼭 학창 시절 불량한 애들처럼 움직였다”며 “박 씨가 맨 위에서 (팀원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미 부동산 분양 계약을 해서 손해를 본 사람들은 더 이상 빼먹을 게 없다는 걸 알고 붙잡지 않지만 힘없는 피해자는 계속 부려먹어야 하니까 더 붙잡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폭행도 있었다. 일당이 한 여성 팀원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A 씨는 말했다.

이들의 범행은 합숙하던 김모 씨(21)가 3번째 탈출하다가 7층에서 추락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남부지법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24일 박 씨의 분양팀에서 근무한 김모 씨(22)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서울 강서경찰서는 19일 박 씨 등 일당 4명을 특수중감금치상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경찰은 보완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박 씨의 범행에 가담한 부인 원모 씨(22)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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