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의협회장의 ‘총파업 협상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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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되기 위한 관문을 통과한 이들은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하는 선언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기원전 377)가 말했다고 알려진 윤리적 다짐입니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인류의 반격이 시작된 겁니다. 우리나라도 26일 첫 접종이 시작됩니다. 방역 당국은 11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너무도 힘든 생활을 견뎌왔던 국민들은 작은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백신 접종이라는 새로운 전환기에서 의료인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방역의 두 주체인 정부와 의사협회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갈등의 진원지는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의료법 개정안입니다. 이 법안은 중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형을 받으면 형 집행 종료 후 5년까지, 집행유예는 기간 만료 후 2년까지 면허 재교부가 금지됩니다. 단, 의료행위 중 일어난 과실은 제외됩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50·사진)은 21일 “이 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때 면허가 취소되고 형이 집행 종료돼도 5년 동안 면허를 갖지 못하게 하는 가혹한 법”이라며 “이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다면 코로나19 진료 및 백신 접종과 관련한 협력 체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 직종은 이미 이와 유사하거나 이보다 더 강력한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의협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최 회장은 “이 법이 통과되면 전국 총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총파업을 하게 되면 코로나19 진단 및 치료, 백신 접종 등에 상당한 장애가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의사 면허에 대한 것은 의협에 자율적인 징계권을 주면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시선은 따갑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협박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협상 카드가 힘과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최 회장이 꺼내 든 카드가 너무 날이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부는 의료계의 협력을 거듭 당부하고 있습니다. 정영호 병원협회 회장은 “인력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의사협회와 협력해서 위기 극복에 협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언에는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맹세가 담겨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보다 동업자의 이해를 앞세운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의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에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의협회장#총파업#협상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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