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대책 ‘무색’…택배 노동자들은 왜 계속 쓰러지나?

뉴스1 입력 2021-01-17 08:11수정 2021-0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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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외국인 노동자 알바 2명 투입한 게 다인데 어떤 지원했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어제도 ‘까대기’(수화물 상하차를 의미하는 업계 은어)를 하는데 오전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이러다 쓰러지는 사람 또 나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A택배회사 기사 한모씨의 목소리는 체념한 듯했다. 한씨는 경기 동부지역 A택배회사 터미널에서 일하는데 택배회사들의 과로사 지원 이후에도 현실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당장 설 연휴가 두렵다고도 했다. 지금 물량도 버거운데 갈수록 늘어나는 물량을 제시간에 맞추긴 불가능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택배회사들의 지원대책이 나온 후에도 안타까운 사고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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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4일과 22일 택배기사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23일에는 30대 택배기사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택배기사는 6개월 만에 몸무게가 20㎏이나 빠지는 등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기사 지원대책 이후에만 1명이 과로사하고 4명이 과로로 쓰러진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6일 택배기사들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측이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합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있다고 주장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전국택배노동조합은 15일 총파업 돌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설 명절 특수기 전까지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대책이 합의되고 즉시 시행되지 않는다면 총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19일 예정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도 난항이 예정된다는 점이다. 당초 사회적 합의기구는 5차례에 걸친 실무회의에서 Δ택배 분류 업무 명확화 Δ작업조건 개선(주 5일제 도입, 적정 작업시간 등) Δ적정 수수료 보장을 위한 유통-택배업 상생방안 Δ택배산업 갑질 근절을 통한 공정한 산업구조 확립 Δ택배가격·거래구조 개선에 대한 공론화 등을 차례로 논의하기로 했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1차 회의에서는 택배 분류 업무 명확화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아울러 1차 회의에서는 큰 틀에서 분류 업무를 사업자의 업무로 보고 다수 택배에서 본인의 택배를 선별하는 것도 분류 업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견을 좁혀갔다.

택배기사의 기본 업무를 집회·배송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현장 여건에 따라 택배기사가 분류 업무까지 수행해야 할 경우, 분류 대가를 지급한다는 내용 등도 합의사항에 담겼다.

그러나 2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은 사실상 파기됐다. 분류작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류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생활물류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실상 협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 표준 계약서 도입과 갱신청구권 6년 보장 등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한 단계 전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생활물류법이지만, 정작 핵심인 분류작업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에 걸림돌로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과로사대책위는 “물류협회가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회의에서 ‘분류작업은 택배업체의 업무이고 현장 여건에 따라 택배기사가 분류 업무까지 수행할 경우 대가를 지급하고 표준 계약서에 명기한다’고 합의해놓고 2차 회의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한 반면 물류협회 측은 “1차 회의에서 이해당사자 의견을 듣고 앞으로 협의를 하자고 한 것이지 합의한 적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분류작업 지원인력 투입을 놓고도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회사는 1월 10일 현재 목표 4000명 대비 77% 수준인 인수지원인력 3078명을 투입했으며, 택배기사들에게 부담이 돌아가지 않도록 관련 조치도 취하고 있더”며 “비용부담 협의를 마치지 못한 소수 집배점과의 논의도 마무리 단계이며, 이미 현장에 공지한 대로 협의가 종료되면 지난해 11월분 이후 부담에 대한 소급 정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택배서비스 유지를 통해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택배 종사자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며, 회사도 종사자 보호 종합대책 이행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장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택배기사 한씨는 “분류작업 문제만 해결돼도 쓰러지는 사람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택배노조는 오는 19일 예정된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0~21일 조합원 쟁의 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만약 택배노조가 실제로 총파업에 들어간다면 설 연휴 물류대란은 불 보듯 뻔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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