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보고 싶어요” 어미 애타게 기다리는 딱새 알들

  • 뉴시스
  • 입력 2020년 5월 21일 0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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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사리면 이곡리 농가 우편수취함에 딱새 둥지 틀어

“저러다 세상 구경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한 농가 주택 주인 박노철(80)씨는 집 외벽에 붙어 있는 우편수취함(우편함)을 보다 보면 애가 탄다.

부부의 날인 21일 이 집 우편함 속 좁은 공간에는 둥지가 틀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몽골, 히말라야까지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텃새인 딱새 부부가 지난달 초 이 우편함 속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름잡아 보름 전에는 둥지에 알을 낳았다. 그것도 6개씩이나.

하지만 이 딱새 알들에게 찾아온 불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딱새가 둥지에 알을 낳은 지 얼마 뒤에 둥지를 튼 우편함에 덮개가 닫혔다.
“아마 바람이 불면서 덮개가 내려 앉았나 봐요. 딱새가 둥지를 찾지 못해선지 그 뒤로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어요.”

박씨 부부는 딱새 알들을 볼 때마다 애처롭기만 하다.
딱새가 우편함 속에 둥지를 틀자 이들은 우편함 아래에 조그만한 책상을 하나 놓아 뒀다.

그러고는 이렇게 써놓았다.

‘새알을 낳았어요. 우편물 밑에 놓으세요’

집배원이 둥지를 지은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지 않고 바닥에 가져다 놓은 책상 위에 우편물을 놓아 두도록 했다.
딱새 알을 보호하려는 노부부의 따뜻함을 엿볼 수 있다.

우편함 덮개가 다시는 닫히지 않도록 줄을 당겨 놓았다.

노부부의 이런 배려와 소망에도 둥지를 떠난 딱새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미 딱새가 알을 품어야 하건만 부화기간(12~13일)이 지나도록 암컷 딱새는 소식이 없다.
길이 2㎝ 남짓한 딱새 알들이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해 영영 세상을 보지도 못할 기구한 운명이 될 수도 있기에 노부부는 애달프다.

박씨는 “우편함 속엔 몇 해 전에도 딱새가 둥지를 틀고 알에서 새끼가 나오기도 했다”며 “이번에도 어미 딱새가 다시 날아들어 낳은 알들을 품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 집에는 또 다른 딱새가 새끼를 기르고 있다.

현관문 옆에 10여 년 전에 놓아둔 종이상자에 다른 딱새가 알을 낳아 부화해 새끼가 둥지에서 자라고 있다.

박씨는 “처음엔 종이상자만 뒀더니 새가 오지 않더니 나뭇가지를 함께 놓아 두니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더라”고 했다.

박씨는 집뿐만 아니라 주변 산에도 새집 2개를 지어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뜰에는 오리 모양의 솟대를 세워두기도 했다. 새와 깊은 인연이다.

[괴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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