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봄날의 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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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나이가 먹어도 봄은 정말 좋다. 따뜻한 햇볕, 온화한 기온과 습도, 여기에 몸에 좋은 훈풍(薰風)까지 불어온다. 죽었던 대지가 살아나고, 산과 들에는 분분히 꽃들이 활짝 웃음꽃을 날린다. 봄바람이라도 나고 싶은 아름다운 계절이 4월이다. ‘4월은 죽은 세상이 부활하는 달’이며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이오네스코와 북미 인디언 블랙푸트족은 부른다. 그런데 올 4월은 T 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 딱이다.

이도우의 장편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만나지 말자는 소리네.” “…….” “날씨가 언제 좋아지는데. 추위 끝나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 울면?” “…….” “그럼 미세먼지를 끌어안고 황사가 오겠지. 봄 내내 뿌연 하늘이다가 겨우 먼지 끝나면 폭염에 장마가 오겠지. 그냥, 만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렴.”

언젠가부터 미세먼지가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봄 자락을 빼앗아버렸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가 완벽하게 이 좋은 봄을 강탈해 버렸다. 소설처럼 봄이 지나면 열대야에 홍수에 태풍까지 들이닥칠 수 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의 좋은 날씨도 우리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특히 열정이 불타오르는 젊은이들에겐 더할 것이다. 젊음은 햇빛 비치는 좋은 날에 밖으로 뛰어나가게 만든다.

기업은 젊은이들이 날씨가 좋은 날 야외 활동을 즐긴다는 사실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탬파와 마이애미의 유통업 판매액수는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이 지역은 차로 몇 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탬파의 매출액이 올라가고 마이애미는 떨어진다. 마이애미에 좀 더 젊은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날씨가 좋으면 놀러 나가고 날씨가 나쁠 때 쇼핑을 한다. 그러나 탬파는 연령이 높은 도시여서 맑은 날 쇼핑을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집에서 쉰다.

날씨는 미국 선거에도 영향을 준다. 젊은이들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투표를 잘 하지 않고 나들이를 즐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지지하는 진보적인 민주당은 비가 오기를 기도한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리퍼블리컨 블루’라는 말이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선거날 날씨가 좋으면 공화당이 승리하고, 날씨가 나쁘면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 법칙에 가장 큰 덕을 본 대통령이 트루먼이다. 당시 미국의 정치전문가들은 공화당의 듀이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날씨가 미국 대통령 당락을 바꿨다. 일리노이주에는 엄청난 비가 내렸다. 캘리포니아 북부지역은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 트루먼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던 지역에서 많은 표 차이로 이기면서 트루먼이 당선된 것이다.

케이웨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날씨에 따라 보수와 진보 사이에 유의미한 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총선일인 15일 날씨는 매우 좋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놀러갈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방콕’만 하지 말고 봄바람도 쐴 겸 소중한 표를 꼭 행사하도록 하자.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4·15 총선#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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