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만세운동 주도… ‘유관순 리더십’ 원천 밝혀지나

  • 동아일보

‘유관순 연구’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 아우내장터시위 ‘범죄인명부’ 찾아
“용두리 주민들, 항의하다 곤장도”
재판기록 토대 당시 상황 유추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는 “유관순 리더십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임 씨가 지난해 4월 1일 충남 천안의 백석대에서 열린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토론에 나선 모습. 백석대 제공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는 “유관순 리더십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임 씨가 지난해 4월 1일 충남 천안의 백석대에서 열린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토론에 나선 모습. 백석대 제공
그러니까 꼭 101년 전의 일이다.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병천면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 열사 주도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1시 장터에 운집한 수천 명이 목청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한 인근 병천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시위 제지에 나섰다가 걷잡을 수 없어지자 총을 쏘았다.

○ “아우내장터 시위대 12명 태형 받아”

당시 발포로 유 열사의 아버지인 유중권 등 2명이 총에 맞아 결국 사망했다. 이어 2시간 뒤 추가로 지원 나온 천안 헌병대 발포로 이들 2명을 포함해 모두 19명이 숨지고 3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천안시동남구문화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천안지역 3·1독립만세운동 조사 및 독립유공자 발굴’ 자료집은 시위 가담자의 재판 기록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시위대 가운데 40명가량은 격분해 총에 맞은 유중권 등을 둘러메고 주재소로 몰려갔다. 유중권의 동생인 유중무(유 열사의 삼촌)는 제지하려는 한국인 헌병 보조원 맹성호에게 “너는 보조원을 몇십 년 할 것 같으냐. 때려죽이겠다”고 소리쳤다. 유 열사는 주재소장을 붙잡고 흔들었고, 김용이는 헌병에게 돌을 던졌다. 시위대 가운데 19명이 재판에 넘겨져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다. 유 열사 등 3명은 3년 형을 받았다.

이 자료집에는 다른 3·1운동 기록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담겨 있다. 당시 주재소에 몰려간 사람들 중 12명이 즉결처분으로 태형(笞刑·곤장형)을 받았다는 기록이다.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가 3·1운동 100주년인 지난해 천안시의 의뢰로 지역독립만세운동을 조사하다 병천면주민센터에 보관돼 있던 아우내장터 시위 참가자 26명의 ‘범죄인명부’를 찾아내 알려졌다.

○ ‘유관순 리더십’ 연구 계기될 듯

임 씨는 이 밖에도 잘못 알려진 유 열사의 탄생 연도와 생일, 순국일, 공주지방법원 판결 형량 등을 바로잡았고 유 열사가 항소를 포기한 사실을 밝혀낸 유관순 연구자다. 신원조회용으로 읍면동에서 보관해온 범죄인명부는 오래되면 폐기하지만 용두리의 기록은 이 마을이 1973년 동면에서 병천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보관기간이 새로 시작돼 폐기를 면할 수 있었다.

범죄인명부에 따르면 태형을 받은 12명 가운데 9명은 유 열사가 살았던 용두리 주민이고, 3명은 인근 수신면 백자리 주민이다. 이들은 곤장 90∼60대를 선고받았는데 그 가운데 용두리 주민 8명이 최고형(90대)을 받았다. 임 씨는 이날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9명이나 됐는데 유독 용두리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다가 혹독한 태형을 많이 받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두리 주민들의 태형 기록은 유중권의 마을 내 신망과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며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런저런 증언을 종합할 때 유중권이 광복 전까지 농촌 마을에 확산돼 있던 두레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임 씨는 “유 열사가 어린 나이에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한 리더십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가 학계의 관심사였다. 그동안 기독교 교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이번 범죄인명부 발굴을 계기로 유 열사가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고 심부름을 하면서 리더십이 형성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유관순 리더십#‘범죄인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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