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30일 검찰에 출석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관련 피의자 신분이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오전 10시4분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이번 사건은 작년 11월에 검찰총장의 지시로 검찰 스스로 울산에서 1년8개월이나 덮어뒀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할 때 이미 분명한 목적을 갖고 기획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그 기획이 그럴 듯해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며 “정말 제가 울산 지방선거에 개입했다고 입증할 수 있나. 입증을 못하면 그땐 누군가 반성도 하고 사과도 하고 또 책임도 지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임 전 실장은 “우리 검찰이 좀 더 반듯하고 단정했으면 좋겠다”며 “‘내가 제일 세다, 최고다, 누구든 영장 치고 기소할 수 있다’ 제발 그러지 말고 오늘날 왜 손에서 물 빠져 나가듯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지 아프게 돌아봤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권력기관은 오직 국민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라며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은 과거 수사를 받고 기소됐던 상황도 언급했다. 그는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지난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 받았다. 그는 “저는 과거에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피해를 입었다. 무죄를 받기까지 3년 가까이 말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며 “검찰이 하는 업무는 그 특성상 한 사람의 인생 전부와 그 가족의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검찰은 그 어떤 기관보다 더 신중하고 절제력 있게 남용함이 없이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이번처럼 하고 싶은 만큼 전방위로 압수수색을 해대고 부르고 싶은 만큼 몇명이든 불러들여서 사건을 구성하고 법 조문 구석구석을 들이대면 몇명이든 기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다만 임 전 실장은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했는지’, ‘(경쟁자에게) 경선 포기를 대가로 자리를 제안했는지’, ‘청와대 관계자들이 대거 기소됐는데 어떤 입장인지’ 등의 취재진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양해를 구한다”며 “구체적인 질문은 조사 후에 나오는 길에 필요하면 답을 드리도록 하겠다”며 조사실로 들어갔다.
임 전 실장은 외투를 걸치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천천히 걸어 포토라인에 서서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서울중앙지검 앞에는 7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주변에 대기하던 일부 시민들은 “죗값을 치러라”, “국민들 앞에 고개 숙여라”, “특혜 부리지 마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에 공개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윤 총장과 일부 검사들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번 사건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에 가깝다”면서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쫓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을 해서 짜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임 전 실장을 상대로 청와대가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시장 선거에 관여했다는 의혹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다. 전날에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검찰에 처음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임 전 실장은 당시 송 시장에게 선거 출마를 권유하고, 당내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경선 포기를 종용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송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송 시장 측근인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에서 임 전 실장이 VIP(대통령)를 대신해 송 시장에게 선거 출마를 요청한다는 취지의 메모가 적힌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전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관련자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 5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송 시장과 송 전 부시장,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8명도 기소됐다.
다만 검찰은 조사가 진행 중인 임 전 실장과 이 비서관 등 남은 관련자들은 4월 총선 이후 사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다음달 3일 인사이동으로 수사팀 상당수가 교체되고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혐의 입증이 충분하다고 본 관련자들을 우선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는 추후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