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감리자 상주’ 의무화했지만… 규정 지키는지 아무도 안챙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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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철거건물 붕괴 ‘무너진 안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현장에 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주했던 게 한 번이고, 나머지도 왔다 갔다 했다.”

4일 철거 도중 붕괴된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공사현장의 감리를 맡은 정모 씨(87)는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붕괴 사고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현장소장과 인부들은 “공사가 시작된 이후 현장에서 감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서초구는 잠원동 건물 철거업체의 공사를 허락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달았고 이런 조건을 이행한 뒤 공사를 시작하라고 했다. 서초구가 공사 심의사항을 통해 가장 먼저 제시한 조건이 ‘감리자의 현장 상주’이다. 서초구는 “실질적인 감리 수행이 가능한 철거 감리자가 상주하는 조건 아래 공사를 수행하기 바람”이라고 명시했다. 이에 대한 철거업체의 조치사항으로는 ‘감리확인서 제출’이라고 돼 있다.

서초구의 이 같은 심의는 2년 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공사현장 붕괴 사고 이후에 나온 서울시 권고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낙원동 사고 이후 감리자의 현장 상주를 의무화할 것을 각 구청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지상 5층 또는 높이 13m 이상 건물을 철거할 때는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철거업체는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할 것처럼 해 심의를 통과했지만 실제로 지키지는 않은 것이다. 정 씨뿐 아니라 정 씨가 감리 일을 대신 맡긴 동생(73)도 건물 붕괴 당일 현장에 없었던 사실이 경찰 조사로 확인됐다. 경찰은 정 씨가 감리 업무를 동생에게 맡긴 것이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현장소장과 건물주 등이 철거 건물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소장과 건물주 등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건물 붕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건물이 붕괴되기 1, 2일 전에 있었지만 현장소장 등은 아무런 보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은 대화 내용을 확보하고 관련자들을 상대로 조사 중이다.

또 건물주가 건물 붕괴 가능성에 대해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한 정황도 경찰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주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한 번도 현장에 간 적이 없고 총괄해서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한테 전적으로 맡겼다”고 말했다.

경찰은 철거공사를 하면서 잭서포트(지지대)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등으로 현장소장과 건물주 등을 입건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김하경 기자
#잠원동 철거건물#붕괴 사고#감리자 상주#현장소장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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