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확인 설문에 ‘피임’ ‘경제 사정’ 물은 대학교…인권위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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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28일 0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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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확인 시 강의내용과 관련 없는 질문들로 구성된 설문조사에 응하도록 강제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A 대학교 B 학생은 재학생들이 본인의 성적을 확인하기 전에 사적인 질문을 포함한 설문조사에 강제 답변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A 대학교와 A 대학교 학생생활상담연구소는 "재학생들의 실태조사를 위하여 설문조사를 하였을 뿐, 개인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수집하지 않았으며, 응답결과도 제한된 인원만이 접근할 수 있고 파일을 암호화하여 관리하였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와 같은 온라인 조사는 다른 학교들에서도 유사하게 실시한 적이 있는 것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 결과 해당 설문조사에는 △연애 경험 유무, △연애 상대의 성별(동성인지 이성인지 여부), △첫 성관계 시기 및 성관계에 관한 생각, 피임여부 △진로 계획 및 경제적 사정, △가족과의 관계, △왕따 경험 등의 질문이 포함됐다.

설문조사는 개인 신상 및 생활환경 (5개 항목), 진로(20개 항목), 타인과의 관계 (12개 항목), 학업진행 (9개 항목), 학교에서의 학업 의향(3개 항목) 삶의 만족도 (2개 항목), 스트레스 대처방식(14개 항목), 최근 감정 경험(10개 항목) 학생생활상담연구소 이용 경험(5개) 성인식 조사 (15개 항목) 소속대학, 학년, 입학연도 및 전형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됐다. 학번 및 성명 등은 기입하지 않아도 됐다. 단 연계 질문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질문에 응답해야만 성적 확인이 가능했다.

당초 설문지에는 설문 목적이 기재되지 않고 '미응답'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진정인을 비롯한 학생들의 항의가 발생하자 A 대학교는 설문지를 개선해 설문조사의 목적을 기재하고 5개 항목에 대해 '미선택' 항목을 추가했다.

'미선택' 항목이 추가된 질문은 △현재 연애 상대의 유무 및 성별 (동성인지 이성인지 여부) △지금 나이에 교제하는 사람과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신체접촉의 정도 △만남을 가진 뒤 얼마 만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처음 성관계를 가진 시기 △성관계 시 피임 여부 등이 있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대학생들은 진로 선택, 장학금, 성적 정정 요구 등을 위해 본인의 성적을 확인해야만 함에도 온라인 성적 확인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성적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 상 이 사건 설문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학생들의 처지를 이용하여 성적 확인 과정의 필수절차로써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강제한 것은 부적절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인권위는 설문조사의 질문들이 학생들에게 민감한 질문이고, 일반적인 강의평가와 달리 수강한 강의의 성적을 확인하려는 학생들의 의도와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하여 응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학생들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이면서 중대하다며 A 대학교의 설문조사 방식이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결정했다.

이에 인권위는 A 대학교 총장에게 피진정인과 연구소 직원들에 대하여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과 A 대학교 학생생활상담연구소장에게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김소정 동아닷컴 기자 toy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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