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母子 그들은 왜 차도로 내몰렸나…전동휠체어 직접 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0일 21시 10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동휠체어에 탄 기자는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를 지나며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인도 양쪽에는 가구점에서 내놓은 싱크대와 의자 등이 빼곡했다. 폭 60㎝짜리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기를 피하려다보니 가로수 보호판 홈에 바퀴가 자꾸 빠졌다. 가로수를 피하려니 집기와 부딪혔다.

간신히 50m쯤 지난 순간 ‘드드득’ 소리와 함께 몸이 휘청거렸다. 전동휠체어가 15㎝ 높이로 솟은 시멘트 턱을 넘지 못하고 뒤로 쓰러진 것이다. 안전벨트에 묶여있던 기자는 주변 상인들이 일으켜줄 때까지 하늘만 바라본 채 누워있어야 했다. 결국 시멘트 턱 앞에서 길을 되돌아가 차도로 나와야 했다. 지난달 26일 새벽 부산 영도구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택시에 치였던 장애인 모자(母子)가 왜 인도 대신 차도를 이용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차도보다 위험한 인도
6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보도에서 본보 김자현 기자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곳곳에 주방 집기들이 놓여 있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6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보도에서 본보 김자현 기자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곳곳에 주방 집기들이 놓여 있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기자는 6일 오후 1시 반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중구와 성동구, 용산구, 동대문구 일대를 전동휠체어로 직접 돌아다녔다. 전동휠체어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로 분류돼 인도로 다녀야 한다. 하지만 인도는 도로 환경이 열악해 곳곳이 ‘지뢰밭’이었고, 차도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동대문구 일대 청계천변 인도를 따라 이동하는 매순간이 조마조마했다. 폭 1m 인도의 가운데 곳곳에 가로수가 심어져있어 폭 60㎝짜리 전동휠체어로 지나려면 여유 폭이 2~3㎝에 불과했다. 매순간 좌우 바퀴를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는데도 결국 가로수 보호판 홈에 바퀴가 빠지면서 차도 쪽으로 넘어질 뻔했다. 차도에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면 교통사고가 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맞물리는 경사면에서도 주의가 필요했다. 성동구에서 인도와 차도를 매끄럽게 잇는 경사면을 지날 때 전동휠체어가 오른쪽으로 휘청거렸다. 급히 다리를 땅에 짚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장애인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차도로 넘어졌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일방통행로에 늘어선 입간판들이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입간판들이 인도 곳곳을 막고 있어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차도로 역주행을 해야 했다. 기자가 차도로 역주행하는 동안 반대편에서 차가 달려와 휠체어 옆을 스쳐갔다. 3시간 동안 전동휠체어를 타며 수차례 돌발상황을 겪었고, 그 때마다 손잡이를 꽉 움켜쥔 탓에 어깨에 담이 올 지경이었다.

“차도로 내몰린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해야”

노령화 등으로 장애인이 늘어나면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동휠체어 소지자는 2014년 5만9748명에서 2017년 6만301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이동권은 한낮 수도 서울의 중심가에서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열악한 도보 환경을 피해 아스팔트 위로 다니는 전동휠체어에 탄 교통약자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주은미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상담실장은 “불법 주차된 차량을 피하려다 사고가 났다면 불법 주차 차량에게도 책임을 묻지만 장애인이 인도로 도저히 갈 수 없어 차도로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에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도록 인도 환경을 적극 점검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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