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A고 교장은 두 달 동안 여러 교사에게 이런 말을 하며 속앓이를 했다. A고는 지난해 12월 교사들을 대상으로 10여 개 부서의 부장을 발표했다. 이 중 특별활동부, 정보교육부 등은 모두 부장 자원자가 있었다. 하지만 학생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생활지도부장은 맡겠다는 이가 없었다.
결국 교장은 ‘2월에 새로 오는 교사에게 맡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기존 교사가 생활지도부장을 맡겠다고 나서 한시름 놨다. 하지만 이 교사는 다른 부장들보다 연차가 한참 어렸다. A고 교장은 “마음 약한 어린 교사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맡게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개학을 앞두고 생활지도부장을 선정하지 못한 학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교사들이 생활지도부장을 기피하다 보니 교장과 교감은 폭탄 돌리기를 하듯 지원자를 찾는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77%가 가장 기피하는 보직으로 생활지도부장을 꼽았을 정도다. 생활지도부장을 맡으면 ‘바람 잘 날’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생활지도부장은 주로 학교폭력 사건 담당자로 통한다. 현행법상 학교폭력 사건이 신고되면 무조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가해 학생을 처벌한 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다 보니 생활지도부장의 업무가 크게 늘었다.
서초구 B고 교감은 “자녀의 대입 문제에 관심이 높은 강남구, 서초구에는 학교폭력과 관련해 소송 한두 건 없는 학교가 드물다”고 전했다. 강남구 C고 교장은 “소송에 휘말리는 등 부담이 크니 ‘생활지도부장을 맡으라’고 강하게 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생활지도부장은 ‘학생들한테 존경 못 받고 스트레스만 받는 보직’이 돼 버렸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두발과 복장을 강압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생활지도를 하고 학교폭력 문제를 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은 생활지도부장을 싫어한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생활지도부장은 학생, 학부모의 교원평가 만족도 조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 일쑤다. A고 교장은 “과거 생활지도부장은 무서운 대상이지만 존경받았다”며 “얼마 전 총동창회를 했는데 말썽을 부리던 학생들이 생활지도부장을 지낸 교사에게 존경을 표하는 걸 보고 요즘과 다른 현실을 느꼈다”고 말했다.
생활지도부장 기피 현상은 특히 공립학교에서 두드러진다. 사립학교는 교사들이 한곳에 계속 있다 보니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일’로 여겨 자원자가 나온다. 하지만 공립학교 교사들은 ‘이 학교에서 5년간 잘 피하다 가자’고 생각한다. 서초구 D고 교장은 “일부 공립학교 교장은 기간제 교사한테 생활지도부장을 맡길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학교들은 각종 보상책을 제시하고 있다. 생활지도부장의 수업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교원 성과급은 수업 시간이 많은 교사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또 생활지도부장 등 보직을 맡으면 월 7만 원의 수당을 받는 데 그친다. 담임교사 수당(13만 원)보다 적다.
교육당국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는 생활지도부장의 수업시간을 줄여주는 만큼 시간강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지원하지만 고교는 이마저도 대상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생활지도부장이 기피 보직인 만큼 다른 교사들도 수업 경감과 성과 평가에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