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단체팀 코치(47)가 ‘미투(Me too)’ 운동에 동참,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그 어떤 곳 보다 성폭력 위험이 높은 곳으로 지목된 체육계의 미투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될 지 주목된다.
이경희 코치는 지난 1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서지현 검사를 보고 용기를 내 나오게 됐다”며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간부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리듬체조 선수 출신 이경희 코치는 2007년 남한으로 건너와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당시 월급 약 200만 원을 받고 있던 이경희 코치는 “‘내가 생활이 어려우니 기회 되시면 월급 좀 올려 달라’고 말하자 (A 씨가) ‘그런 얘기 하려면 모텔에 가자’”라고 말했다”면서 “처음에는 모텔이 뭔지도 몰랐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또 (A 씨가) “‘저번보다 살이 빠졌네? 좀 쪘나?’ 라며 훅 만졌다”고 했다.
체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선수·코치 선발 등 협회의 일을 포괄적으로 도맡아 했던 인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A 씨에게 찍히면 대표 선수가 안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이경희 코치는 지난 2014년 3월 코치직을 내려놓기 위해 A 씨를 찾았다. 이경희 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날 A 씨는 이경희 코치와의 대화를 빌미로 차 안으로 유도한 뒤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경희 코치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협회가 감사를 시작하자 A 씨는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러자 협회는 사건의 진상에 대한 발표 없이 감사를 중단했다.
A 씨는 2년 뒤 전보다 높은 직위의 임원 후보가 돼 협회에 돌아왔다고 한다. 협회는 과거 이경희 코치의 탄원을 근거로 A 씨를 부적격자 판단했다. 그러자 A 씨는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이경희 코치는 연인 사이로 성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게 “사귀자는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하고 성관계도 가졌다”며 “여자의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좀 어렵다”고 했다. “문자메시지 등 기록이 있냐”는 질문에는 “연인 사이의 디테일한 문자는 없고, 통화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경희 코치는 A 씨와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이를 들어보면 A 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이경희 코치에게 “나이를 그만큼 먹었으면, 남한에 와서 그 정도 세월이 흘렀으면 좀 파악이 안 되냐. 리듬체조계 돌아가는 게?” “당신이 그럴수록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이 체조계에서 당신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어. 도와주는 척하는 사람이 한두 명 있을지 몰라도”라고 말한다.
A 씨가 성폭력을 부인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협회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A 씨는 자신과 한 북한 출신 여성이 함께 숙박을 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해당 확인서를 작성했다는 한 펜션 주인은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게 “리듬체조 선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사실확인서를 써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시각에 이경희 코치는 은행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한편 협회 측은 감사에서 진상 규명이 끝나기 전 A 씨의 사임을 허락한 것과 대해 “관련 규정이 없다. 임원은 사임하는 즉시 끝나는 걸로 되어 있다”고 방송을 통해 밝혔다. A 씨가 다시 임원 후보가 될 당시 과거 감사 내용을 확인 했는지에 대해서는 “저희가 사전에 인지했다면 검토 대상이 됐을 텐데, 자료에 대략적인 것만 나와 있었기 때문에 미리 검토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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