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이 혐오시설도 아닌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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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반대로 가정형 어린이집 차질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형 어린이집. 주차와 소음 문제 등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해 당초 계획보다 4개월 늦게 문을 열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형 어린이집. 주차와 소음 문제 등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해 당초 계획보다 4개월 늦게 문을 열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2014년 재임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8년까지 서울시내 국공립(구립)어린이집을 1000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집값을 감안해 새로 땅을 사서 짓는 것보다 아파트 단지 관리동이나 1층, 즉 가정형 어린이집을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 생각했다. ‘집 가까운 곳에 어린이집이 생겼으면’ 하는 맞벌이 부부들의 편의도 고려한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구립어린이집은 765개가 생겼다. 4년간 1000개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계획대로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균형이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는 가정형 어린이집을 191개 짓기로 목표를 세웠다. 결과는 130개였다. 특히 2016년에는 52개나 설치한 1층 가정형 어린이집을 지난해는 5개밖에 만들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1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A아파트 1층 가정형 어린이집은 2016년 11월 보육교사까지 채용했지만 지난해 3월에야 문을 열었다. “어린이집이 1층에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 “아파트 1층 복도가 아이들 때문에 지저분해진다” “주차 문제가 심해진다” 등 민원이 생긴 것이다. 어린이집 베란다에 안전을 위해 설치한 비상계단도 “보기 좋지 않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는 만 2세 이하 아동 489명이 사는데 어린이집은 1개뿐이었다. 이 때문에 먼 동네 어린이집으로 가거나 아예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서초구는 주민 공청회를 4차례 열고서야 겨우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어린이집과 바로 붙은 옆집과 위층에 방음벽을 설치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부모들의 자동차 이용을 제한했다. 문제는 4, 5층 주민들의 반대였다. 서초구 관계자는 “직접 찾아가 어린이집을 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100번 찾아간 집도 있다. ‘그냥 싫다’는 집도 있었다. 어린이집이 혐오시설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그런데 개소 10개월이 지난 현재 구청에 접수된 소음, 주차 관련 민원은 ‘0’이다. 집값은 오히려 올랐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이 생기고 우려하던 문제들이 생기지 않자 주민들은 집에 있는 장난감을 가져다줄 정도로 호의적이 됐다”고 말했다.

가정형 어린이집을 추진한 지 1년이 됐지만 문을 열지 못하는 곳도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는 ‘아파트 1층에 가정형 어린이집은 들어올 수 없다’는 현수막까지 내걸고 반대하고 있다. 송파구 관계자는 “인근에 어린이집이 없어 어린이집을 지어 달라는 민원과 수요가 가장 많은 동네다. 하지만 주민 반대가 심하다”고 말했다.

관리동 어린이집도 상황은 비슷하다. 어린이집이 들어서면 관리동에서 임대료 수익을 올릴 수 없다며 반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초구는 지난해 구립어린이집 19개를 더 만들었지만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관리동에 들어선 건 4개뿐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가정형 어린이집을 만들지 못하면 빈 땅을 구입해 신축해야 하는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토지를 구입해 신축할 경우 평균 소요 예산은 19억5000만 원이다. 가정형 어린이집에 비해 많게는 10억 원이 더 든다. 시의 다른 관계자는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에도 동의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절충할 수 있는데도 공청회 같은 자리에 아예 참석하지 않아 의견 수렴이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어린이집#혐오시설#박원순#서울시장#국공립 어린이집#구립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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