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숨진 환자 바다에 버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40대 여성 프로포폴 과다 투여
새벽에 렌터카로 시신 옮겨 유기… 현장에 시계-약 남겨둬 자살 위장
통영 해경, 50대 의사 붙잡아

5일 오후 1시경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문리 앞바다에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40대 안팎의 여성이었다. 근처 선착장에는 숨진 여성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손목시계와 우울증 약 등이 놓여 있었다. 정황상 단순 자살로 보였다.

경찰도 처음에 자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신원 확인에 나섰다. 숨진 여성은 곽모 씨(41). 주소와 직장 모두 서울이고 통영과 아무 연고도 없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5일 새벽 장맛비가 내리던 중 선착장에 30분 넘게 있던 승용차 한 대를 확인했다. 해당 차량은 렌터카였다. 차량 안에서 곽 씨의 유전자(DNA)가, 트렁크에선 곽 씨의 귀고리 핀이 나왔다.

경찰은 차량을 빌려 운전한 남모 씨(57)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그는 경남 거제시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 곽 씨는 남 씨의 환자였다. 그러나 남 씨 의원이 있는 건물 안팎의 CCTV 영상은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남 씨가 경찰에 제출한 곽 씨의 진료기록부에도 조작된 정황이 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25일 진료 중이던 남 씨를 검거했다.

조사 결과 남 씨는 4일 오후 3시경 곽 씨에게 향정신성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투여했다. 약을 투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곽 씨는 숨졌다. 남 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주사실에 시신을 계속 뒀다. 이어 직원이 퇴근한 뒤 렌터카를 빌려 시신을 옮겼고 5일 오전 4시경 바다에 버렸다. 자살로 보이기 위해 선착장에 시계와 약도 갖다 놓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빚이 많은데 피해자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까 봐 겁이 나 시신을 버렸다”면서도 “이날은 프로포폴이 아니라 영양제를 투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곽 씨가 5월부터 20여 차례 내원했고 하루 50∼100cc의 프로포폴을 투약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위내시경 1회에 필요한 프로포폴 적정량은 1∼10cc다. 곽 씨는 평소 우울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로 이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투약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통영해양경찰서는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 유기 등 혐의로 28일 남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간호사를 상대로 또 다른 불법 처방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통영=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의료사고#프로포폴#시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